<사상가 도올이 만난 사람>2년간 소리없이 ‘입법부 개혁’주도-3

―정치관계법 개정작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만?

“지난 12월말까지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의 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지금 지구당은 위헌상태에 빠져있는 셈이죠. 273명 정원중 46명이 전국구이니까 227명이 지역구인셈인데 그 지역구를 16개 더 늘이자는게 열우당을 뺀 야3당의 입장이고, 열우당은 비례대표를 늘이자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입장이 평행선만 달리고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할 때는, 국회법절차에 의하여 다수결원칙의 표결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죠.

“그러나 벼랑에 몰리다 보면 어떤 타협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정치는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것인데 지역구선거만을 통해서는 그러한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배출되기 힘드니까 의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례대표를 늘이자는 주장도 퍽이나 건전한 생각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대표성 또한 한국정치현실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므로 어느 한편에 절대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사람은?

“저는 집안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대학 갈 꿈도 못꾸었습니다. 그런데 동아대학교 총장이셨던 석당 정재환선생께서 ‘너는 잘 성장할 수 있다’라는 말씀하나로 저를 격려해주시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다 대주셨죠. 그분이 안계셨으면 오늘의 저는 없었겠죠. 학비도 학비였지만 무엇보다도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죠.”

―우리국민에게 지금 바로 그러한 용기와 희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이 산만 넘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다는 희망을 병사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넘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에게도 그런 용기와 희망을 주는 아량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증오하고 무시하고 발목만 잡아 될일입니까?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개선된 사회를 만드는 한나라 전체의 지도자입니다. 그만큼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노무현대통령의 색다른 언행의 스타일에 우리 국민이 좀 적응해주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노무현을 싫어한다해도, 그가 도덕적인 원칙을 지향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그의 언행이 국가·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는 분명 우리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재신임운운하는 것은 철저히 반대합니다. 우선 그것은 위헌입니다. 헌법상 유고시, 탄핵소추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임기와 관련된 조항은 없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최소한 5년동안은 안심하고 국정에 전념하라고 뽑은 것입니다. 그런데 임기 자체를 정치적 바게인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한국정치사에 최악의 선례를 남기는 것입니다. 국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잘해보라고 야단칠지언정 그만두라고 야단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재신임투표문제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씀은?

“대여투쟁은 뒤로 미루고 국민신뢰받는 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오래된 정당일수록 과거관행에 집착하는데 그런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권쟁탈의 욕심을 버리고 자체정화를 통해 새로운 도덕성을 창출해야 합니다.”

―의장님은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수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수란 기존의 질서를 중시하는 것이고 진보는 변화를 중시하며 단절도 불사합니다. 그러나 양자는 모두 역사변화의 완급의 차이일 뿐입니다. 지켜야 할 가치와 바꿔야 할 가치는 동시에 필요한 것이죠. 보수는 자유를 중시하고 진보는 평등을 중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배제되는 가치란 말입니까? 항상 같이 필요한 것이죠.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런 질문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날 밤 미진했던 한을 풀기위해 우리는 한남동 의장공관에서 새벽 1시넘어까지 대화를 계속했다. 그만큼 그는 진지하게 나를 대해주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는 술을 한 방울도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