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도올이 만난 사람>2년간 소리없이 ‘입법부 개혁’주도-2

그런데 사실 박관용이 국회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조용히 은퇴한다는 것은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국회에서 어떠한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느냐 하는데 있다. 나는 감히 말하겠다. 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국회의장다운 국회의장이었다고. 그러면 무엇이 과연 국회의장다운 국회의장인가?

“내각제라는 것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융합되어 있는 권력형태이지만 대통령제라는 것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철저히 체크 앤드 밸런스의 서로 간섭하지 않는 대립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행정부는 그 나름대로의 독립된 체제와 전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회는 지역구의 아귀다툼을 거친 사람들이 그냥 모여있는 곳, 그리고 국회의장 의사봉이나 뺏어들고 야단법석을 치는 곳이라는 그런 원초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원이 내 의사봉을 빼앗고 난리를 치기에 내가 물었죠. 나이가 몇인데 이러냐고. 그랬더니 그 의원이 말하더군요. 이런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 지역구에서 표가 쏟아진다고요. 우리민족은 조선왕조로부터 최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저항으로 일관해왔습니다. 민중봉기, 독립, 건국, 반탁, 반공, 반독재… 이 모든 것이 투쟁일 뿐이었죠. 이해와 대화와 설득의 합리적 과정으로서 국회라는 장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절박했던 것이죠. 국회는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투쟁의 장일 뿐이지,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시키기 위한 보편적 가치의 교섭의 장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아직도 국회의원들 당사자들이 국회를 구태의연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지역구의 쌈꾼일뿐 국가운영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일꾼들이 아니라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저는 국정에 대한 질문을 1문1답제로 바꾸었습니다. 과거에는 한 의원이 일어나서 15분간 역사회고 운운 해가면서 되도않는 연설을 늘어놓았죠. 1문1답? 국회의원도 싫어했고 장관도 싫어했어요. 문답의 주제에 대하여 엄청 공부를 해야하니깐요. 이 국회법하나 통과시키느라고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국회의원들만 152명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독일방문기간에 1문1답제를 빼놓고 통과시키려고 했어요. 독일에서 제가 눈물어린 호소의 e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고쳤어요. 이제 대정부 질의는 합리화되었고 파행은 없어졌습니다.

둘째,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감사청구권을 신설했습니다.

셋째, 결산조기심의제도를 만들었죠. 옛날에는 정기국회 100일 동안 예산, 결산, 국정감사, 법안심의를 다 했어요. 그야말로 대충대충 탕탕치고 만 것이죠. 이중에서 결산심의는 6월로 앞당긴 것입니다. 그리고 법안심의도 정기국회기간에는 예산부수법안만 심의하도록 제한시켰습니다. 시간의 안배를 통하여 국회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자는 것이죠.

넷째, 의원친선단을 구체적 기능이 있을 때만 파견하는 것으로 제한시켰습니다. 부질없이 놀러다니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북핵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미국·러시아·일본·중국·EU·IAEA에 6팀을 보내 구체적인 해법을 조사하게 했고 그 결과를 정책권고안으로 문서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

제가 국회의장으로서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한 소리없는 개혁의 일들을 지금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저의 비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앞으로 국회는 전문성이 높은 체계적인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 입법보조기능이 강화되어야 하며, 그것은 국회에 자체 전문연구기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설된 것이 미국의 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에 해당되는 예산정책처입니다. 사무처와 동급의 의장직속기구로서 예산·결산의 재정통제기능을 전문적으로 담당케 한 것입니다. 의회기능의 핵심이 예산입니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예산을 행정부가 다 짜왔고 국회는 그것을 통과시키는 통법부(通法部) 노릇만 한것이죠. 이제부터는 예산을 국회 자체가 짜는 것이죠. 시화호에 1조가 넘는 예산이 들어갔으나 그것은 무효화되었고, 새만금에는 2조가 넘어들어 갔는데 그것은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농어촌구조개선자금은 90조가 들어간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국회가 무식하게 그냥 통과시킬 것만이 아니라 정확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엄청난 국민의 세금이 절약될 것입니다. 국회라는게 결국 왕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제맘대로 거두고 제맘대로 쓰는 것을 막자고 생겨난 것입니다.”

―예산정책처는 몇명정도의 전문인력을 확보할 것입니까?

“100여명 규모가 될 것이고, 앞으로 이러한 재정통제 기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정치·사회·안보 각 방면의 싱크탱크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요. 당분간은 예산에 그 핵심적 기능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의회민주주의의 민권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것은 건양원년 1896년에 조직된 독립협회(獨立協會)였다. 그 독립협회의 꿈이 이제 비로소 본 궤도를 오르기 시작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한국역사의 진로가 지배세력의 사회적 기반의 꾸준한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국회라는 민의의 반영체계의 효율성과 전문성은 반만년의 민중의 열망의 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관용은 소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피어나기 직전의 봉오리와도 같은 묵언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책임이 큽니다. 국회가 과연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구조적 역할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밥그릇 싸움만 일삼는 정치적 사건의 가십거리만 보도해왔죠. 법안의 내용에 관하여는 심층취재를 안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올 5월에는 국회방송국이 개국됩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라도 국회와 국민의 거리가 좁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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