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도올이 만난사람>2년간 소리없이 ‘입법부개혁’주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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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기억하시죠? 그런데 그 부인을 소개할 때, 항상 물리학박사이시며 여성연맹위원장이시며 차우세스쿠대통령 영부인이신 엘레나 운운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말이죠, 아무도 그 여자가 어디서 물리학박사학위를 받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날 어떤 여자가 공항에 여권도 없이 나타나서 자기가 차우세스쿠 부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황당해진 세관장이 대통령비서실에 연락했더니, 그 여자에게 H2O가 뭐냐고 물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관장이 시키는대로 물어봤더니 그 여자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들은 대통령비서진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더니 전화통에 대고 왈: ‘그 그 부인이 진짜다아！’”

와악∼하고 좌중에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으나 나는 어리둥절하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리로는 물리학박사와 H2O는 그리 필연적 관계가 없었다. H2O는 물리학보다는 차라리 화학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박사라도 H2O가 뭐냐는 그런 황당한 질문에는 얼마든지 대답못할 수 있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내가 박관용국회의장을 만난 것은 지난 목요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2층 의장실에서였다. 그런데 그 며칠전부터 나는 10시에 그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뉴스를 틀어보니깐 노무현대통령이 한·칠레간 FTA 국회 비준의 설득을 위하여 11시에 국회의장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상식으로는 대통령이 11시에 온다는데 국회의장이 나와 10시부터 편안하게 인터뷰할 수 있을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런데 국회의장 공보관으로부터 인터뷰취소의 아무런 통지가 없었다. 박관용의장은 예정대로 나와 10시부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비서관들의 재촉이 있었지만 정확하게 11시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서 자리를 떴다. 국회의장의 달라진 위상을 내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부탁하러 온 사람이다. 의장이 미리 나가 서성거릴 필요는 없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통령이 자기가 입안한 정책을 세일즈하기 위해서 국회에 온 최초의 이벤트라 했다.

자유주의적 정부조직원리로서 권력분립을 최초로 주장한 것은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중의 한사람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였지만, 이것을 3권분립론으로 발전시킨 것은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C. S. Montesquieu, 1689∼1755)였다.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어 각 기관 상호간에 견제·균형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권력의 집중·전횡을 막고,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삼권분립은 근대헌법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가 규정하고 있는 바대로,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는 헌법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리를 아주 엄밀하게 적용한다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의 수반인 국회의장이나,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사실 권력서열에 있어서 동등한 위치로서 국민의 심상에 다가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 인식체계 속에서는,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이며, 그 명령을 수행하는 하수인 정도의 느낌밖에는 없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행위가 결국 대통령이라는 행정권력자의 시녀노릇밖에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헌정사상 길이 남을 국회의장 자유투표를 실시, 대통령지정이 아닌 최초의 의장을 선출함으로써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이제 우리는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립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2002년 7월 8일 박관용이 국회의장 당선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박관용은 1967년 10월 부산에서 맹호열차를 타고 올라와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취직했다. 부산중학교 1년 선배인 이기택의원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1967년 이후 그는 김영삼대통령 비서실장·정치담당특보를 했던 3년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국회와 인연을 맺었다.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시작하여, 전문위원, 국회의원을 거쳐 국회의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은 물론 박관용이 유일하다. 김종필·이만섭을 빼놓고는 국회와의 인연으로 치면 가장 고참이라 했다. 제일 긴 사람이다. 이기택이 정치정화법에 묶이는 바람에 국회의원출마의 기회가 생겼다. 그는 11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한번도 낙선없이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6선을 했다. 동래사람들은 그를 24년간 지원한 것이다. 연속 6선의 케이스는 포천·연천의 이한동의원과 박관용, 딱 두사람 뿐이라고 한다. 박관용은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대하여 육군 참모총장까지 올라간 셈이다. 그는 부산 동아대학교 다닐 때, 2학년 때 모의국회 부의장을 했고 3학년 때 모의국회 의장을 했다. 그가 졸업할 때 학보사의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했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가?”

“국회의장이 되겠다.”

그러니까 박관용은 대한민국 국회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평생을 국회에 헌신했고 오로지 국회를 위해서 살았다. 그리고 그 최고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아름다운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국회에서 삶을 시작하여 국회에서 삶을 마감하려는 것이다.

“나는 부산동래에서 첫출마할때 떠날 때를 분명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성공적인 영화는 라스트 신이 좋아야 한다. 국회의장직을 마감하면 재출마하지 않고 정치와 전혀 무관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2003. 7. 9. 기자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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