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담정>혁명에 성공하고도 개혁엔 실패한 왕조

몇해전에 서태지가 ‘하여가’(何如歌)를 지었는데 그 원본인즉 다음과 같다.

이런들 엇더하리 저런들 엇더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얽혀 천년만년 누리리라

如此亦何如, 如彼亦何如.

城隍堂後壇,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원래 이 시조가 어떻게 읊어졌는지는 알수가 없으나 우리에게 전해내려오는 것은 한문이다. 마지막 두줄은 이렇게 직역되는 것이 옳다.

성황당 뒷제단이 무너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하여 안죽은들 엇더하리

때는 1392년 4월 초사흗날이었다. 이때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나이는 새파란 26세였고, 정몽주는 56세의 재상이었다. “성황당 뒷제단이 무너진다”하는 뜻은 고려조가 이미 퇴락할대로 퇴락하여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 것이다. “하여가”라 하는 제목은 “엇더하리”의 한문이 하여(何如)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대의나 기강은 “이런들 엇더하리 저런들 엇더하리”식의 변통의 논리로는 바로 잡힐 수가 없다. 우리가 보통 단심가(丹心歌)라 하는 정몽주의 화답시에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은 이방원의 졸렬한 논리와 너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혁명(革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명(命)을 간다(革)는 뜻이다. 간다는 뜻의 혁(革)은 ‘주역’의 한 괘의 이름이다. 보통 역성(易姓)이라 하는 것은 한 조대의 왕위를 계승하는 성씨를 갈아버린다는 뜻으로 한 국가체제의 종언을 의미한다. 그 용례는 경전에는 없으며 ‘사기’에 처음 나온다.

5·16을 혁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국정교과서에도 ‘군사정변’(military coup d’？？at)으로 규정되어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 정변의 주체세력이 명을 갈아야만 하는 역사적 필연성을 자내적(自內的)으로 창출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정권의 변화의 계기만을 마련했을 뿐이다. 자유당정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하여 본질적 항거를 한 세력이 아니었다. 그 항거의 주체세력은 4·19를 일으킨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광범한 민중의 저항을 대변했다. 5·16정변의 실제내용은 4·19혁명이었다. 4·19혁명은 5·16의 주체세력에게 대미제국의 체제하에서도 정권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고려조 易性에는 뜻달라 끝내 결별

이성계·이방원의 거사는 정변(쿠데타)인가, 혁명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오직 그들이 고려조의 명을 갈아야만 했던 필연성을 창출한 주체세력으로서 어떠한 역사적 행위를 하였는가에 따라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고려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변혁하려는 그들의 개혁의지에 대한 정열과 헌신,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길밖에는 없다.

맹자도 일찌기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했거니와 한 국가의 명운은 경제에 달려있다. 고려조의 경제는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파탄의 지경에 있었다. 자경농(自耕農)이든 차경농(借耕農)이든 국가는 땅의 소출의 1/10을 세금으로 거두었다. 그런데 화폐경제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당시로서는 일괄적으로 소출의 1/10을 거두어 들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관리들의 녹봉으로 일정한 토지구역의 수조권(收租權)을 준다. 문제는 이 관리들이 현역에서 물러날 때 수조권을 반납해야 하는데 계속 1/10의 소출을 받아먹는다는데 있다. 국가는 다음 부임자에게 같은 땅에 같은 수조권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수조권은 권문세가에 대대로 세습되었다. 이렇게 되면 한 농민의 땅에 수조권자가 9명이 될 수도 있다. 10마지기에 30가마의 소출을 낸 농민은 이놈 저놈에게 27가마를 빼앗기고 겨우 3가마로 추운 겨울에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한다. 그나마도 땅을 빼앗길까봐 끽소리할 수도 없다.

삼봉 정도전은 이러한 농민의 실상을 파악하고 전 국가의 토지를 공전(公田)화하는 과격한 토지공개념을 구상하고 전국의 자경농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계민수전(計民授田)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에 대하여 조준은 토지소유권은 건드리지 말고, 불법수조권만 박탈하자고 주장했다. 현역관리만 받아먹을 수 있게 하며 그것도 경기지방에만 한정하자는 것이다. 현역관리에게 주는 땅을 과전(科田)이라 불렀기에 이를 과전법이라 하는 것이다. 바로 이성계의 혁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과전법의 성공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말에 ‘이밥’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계 덕분에 먹게 된 흰 쌀밥”이라는 뜻으로 여말선초에 생겨난 말이다.

반역 불구 정몽주는 개국초기 복권

이러한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포은 정몽주였다. 5살 위였던 포은은 삼봉을 사랑하고 아끼었다. 정몽주는 정도전의 재질을 일찍 간파하고 사회개혁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맹자’라는 혁명지서를 처음 가르쳐준 것도 정몽주였다. 그러니까 정도전에게 ‘의식화교육’을 베푼 이가 바로 정몽주였다. 그리고 정도전이 무장 이성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정몽주형님의 알선에 의한 것이었다. 정몽주·정도전·권근·조준, 이 모든 신진유생들은 이색이라는 걸출한 성리학자의 문하생이었다. 성리학은 당시 매우 새로운 학문의 사조였다.

그러나 이들 개혁파들에 대한 기득권자들, 즉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권문세가들의 반발이 얼마나 치열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간다. 정도전의 꿈은 계속 좌절되어만 갔다. 정도전은 생애의 어느 순간엔가 개혁은 조대의 변화, 즉 역성혁명이라는 근원적 정체의 변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포은형님 이제 뒤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안돼 475년간 유지되어온 이 사직을 내손으로 엎을 수는 없다.”

“형님 그럼 우린 결별입니다.”

정몽주는 잽싸게 정도전을 예주 봉화에서 체포하여 예천의 감옥에 집어넣는다. 포은은 사랑하는 후배 삼봉을 죽이려 했다. 이때 이성계가 명(明)에서 돌아오는 세자 석(奭)을 황주로 마중나간 길에 사냥을 했는데 낙마하여 크게 부상한다. 정몽주일파의 득세가 결정적인 듯이 보이는 순간,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조영규를 시켜 정몽주를 철퇴로 격살해버리는 것이다. 이방원의 포은격살은 적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로써 삼봉은 극적으로 구출되었고 조선왕조는 개창되기에 이른다.

포은이나 삼봉이나 모두 개혁파였고 고려사회의 죄악에 깊은 통한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포은은 구질서에 일편단심을 지켰고 삼봉은 새질서를 개창했다. 역사의 대세로 보면 포은은 분명 반역이요 삼봉은 새로운 명(命)의 정통이다. 그런데 우리 심상에 포은은 충절과 의리를 지킨 위대한 인물임에 반하여 삼봉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정객이다. 혁명의 열매를 쟁취한 인물들에겐 또 다시 포은이 필요할까? 삼봉이 필요할까? 아이러니컬하게도 혁명의 반역자 정몽주는 혁명후 곧(태종 5년) 권근의 요청으로 대광보국승록대부 영의정부사 익양부원군에 추증되고 영예스럽게 문묘에까지 배향되지만, 정작 혁명의 성공자 삼봉은 역모의 누명을 쓰고 ‘실록’에서 비천하게 왜곡되어 묘사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유혼과 후손들은 조선왕조 오백년간 수모와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고종 2년에야 대원군이 그의 훈작을 회복시켜주었던 것이다.

정도전 폄하는 '좌절의 역사'의 근원

우리가 정몽주에게 경의를 표하는 만큼은 정도전의 신념과 헌신에도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조선초기부터 정몽주를 숭앙하고 정도전을 폄하한 그 소이연에 이미 조선왕조의 보수적 성격이 틀지워졌던 것이며 조광조로 대변되는 사림(士林)의 좌절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좌절은 결국 조선말 동학의 좌절, 그리고 20세기의 줄기찬 양심세력들의 좌절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얘기들이 지금 한나라당에 유리할까? 민주당에 유리할까? 우리당에 유리할까? 혹은 3당중 누구에게 제일 불리할까?

나는 말한다 변소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쿠린내가 나지 않는다. 쿠린내에 쩔어버렸기 때문에 쿠린내를 맡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MBC 도올특강에 대하여 어떤 자가 쿠린내가 더 많이 나냐고 서로 변소깐에서 따지고 있는 꼴을 가상하게 바라볼 수 있는 국민은 확언컨대 단 한명도 없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변소깐을 튀쳐나와 쿠린내를 털어버리는 자만이 신선한 공기를 국민들과 더불어 같이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밤 11시에 방영될 MBC특강에는 이러한 우리역사의 총체적 긴장감이 면면히 감돌고 있다. 우리 편집자들도 그만큼 긴장감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외친다: “역사는 과거속에 갇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