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남일의 80년대 문학의 갈피를 들추며>송기원씨 81년 ‘어머니 자진’ 비보

지금이야 흘러간 옛이야기처럼 감옥 이야기를 이렇게 쓰지만, 당시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오면 누군가 또 끌려갔다는 소식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달리 할 일은 없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농성을 하면서 몇 번 구호를 외쳐도 보지만, 한번 닫힌 구치소 철문은 호락호락 열리는 법이 없었다.

감옥에서 송기원은 가장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1981년 여름, 그에게 날아든 청천벽력의 소식―경기도 화성 월문리에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자식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라는, 당신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죄목으로 15년 징역형을 받았다니 어머니는 날밤을 새우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결론은, 동업의 김성동이 말하듯 “저 후백제의 좌절 이후 이 땅의 어머니들이 써온 눈물겨운 방법 가운데 하나”인 자진(自盡)이었다. 제아무리 살벌한 5공 정권이라도 어머니의 목숨으로 행여 자식을 살릴 수 있을까 싶었던 것. 하지만 그는 철문을 나서지 못했고, 묘소 앞에서 음복주를 마신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1986년 10월 30일, 전두환 정권은 갑자기 “북한이 200억t 규모의 금강산 발전소를 착공, 한꺼번에 방류하면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의 허리 부분이 완전히 황폐화하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해를 가져 오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른바 금강산댐 사건이었다. 핵무기보다 위력적인 수공(水攻) 시나리오가 텔레비전 화면을 도배했다. 아직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전북대생 정도상은 그런 공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당연히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감옥에서 그는 해괴한 봉욕을 당한다.

교도관들 왈, “자네들이 법을 어겨 여기 들어오게 됐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그러니 다들 정성을 모아 평화의 댐 성금을 내자구.” 정도상은 성금을 내지 않아 다시 한번 ‘매국노’가 되었고, 그후 나와서는 곧바로 감옥 이야기를 쓴 소설 ‘십오방 이야기’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80년대 내내 어느 한 해인들 이 땅의 감옥에 문인이 없던 해는 없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건 이후만 보더라도, 송기원, 김진경, 윤재철, 김희식, 문익환, 김종철, 박용수, 김정환, 김병걸, 유시춘, 진관, 이산하, 백무산, 이기형, 주인석, 고규태, 고은, 김사인, 임규찬, 백진기, 임형진 등이 이미 장기 수형생활을 하고 있던 김남주, 이광웅에 이어 감옥을 채웠던 것이다.

일이 이렇다 보니, 80년대 문학은 ‘옥중문학’으로도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기록을 세운다. 감옥이 내 문학의 학교였다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던 시절이었다. 유치장을 체험하고 싶어 부러 폭음을 하고 기어이 소원을 풀었다는, ‘동물농장’과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때와 나라를 잘못 가려 태어난 셈이겠다. 아마 어느 집회를 위해 쓴 시일 것이다. 신경림의 시 중에 ‘아아 모두들 여기 모였구나’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철창에 뜨는 달 먼 산에 피는/ 아지랑이에 한숨 짓기도 했지만/ 마룻바닥에 이마 대고 울기도 했지만/ 깊은 절망에 한숨 쉬기도 했지만/ 모두들 주먹 다시 부르쥐는구나” 80년대는 모두들 모인 그 ‘여기’가 바로 감옥이었다. 하긴, 그때 이 땅의 어딘들 감옥이 아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