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딜레마’라는게 있다. 재기 넘치는 작가 김영하가 만든 말인데 이런 얘기다.
어느날 천혜의 비경 동강에 시멘트댐을 건설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묵과할수 없는 환경운동가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 집회, 사진전, 탄원서 제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운동에 나선다. 운동전략은 동강이 얼마나 빼어난 강인지, 얼마나 소중한 생태계의 보고인지를 알리는데 집중된다. 동강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곳의 소중함을 알게되고 결국 투쟁은 승리한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다. 그 좋다는 동강을 보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동강은 래프팅보트로 뒤덮이고 도시사람들의 손때가 타면서 수질이 급속히 악화된다. 동강이 망가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댐건설 기간보다도 훨씬 짧았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던 일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질되는 것이 곧 동강 딜레마다. 주목할 것은 그 과정에서 대의에는 박수치면서도 자기만은 예외라는 심리가 끼여들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동강 딜레마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 사안을 대선 핵심공약의 하나로 부각시켜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봉급은 절반 남짓밖에 못받고, 통근버스조차 함께 못타는 비인간적인 처지가 알려지면서 모두들 공분했다. 일반시민뿐 아니라 노조도, 경제단체도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다짐했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지금 어찌된 일인지 비정규직 수는 되레 급증했다. 노동부 통계로 2002년 8월 379만명(전체의 27.8%)에서 2003년 8월 460만명(32.6%)으로 1년새 80만명이 늘었고 지금도 늘고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은행에서 신규채용한 직원의 83%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차별폐지를 부르짖으며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던질 정도로 처우 역시 한치도 나아진게 없다. 오히려 요즘 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을 해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노사협상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을 우려해 소리소문없이 비정규직들을 내보낸다는 얘기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답시고 판을 벌인게 비정규직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 꼴이다.
모두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지지하는데도 사정은 더 악화되는 역설은 정부, 정규직 노조, 사용자측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의 19%인 23만여명이나 된다. 주무부서인 노동부가 49%로 단연 1위다. 이 수치는 조만간 더 늘어나게 돼있다. 얼마전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위적으로라도 비정규직을 늘려가겠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중인 파견근로의 전업종 확대 방안은 비정규직을 양산, 고착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노동계는 외관상 비정규직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다. 한국노총은 ‘정규직 급여의 85%보장’을 단체협약 지침으로 확정했다. 85%의 근거도 명확치 않지만 전제가 되어야할 정규직의 양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정규직의 몫을 떼주거나 최소한 임금동결 선언이라도 해야 협상이 되는 것이다. 실현성에 의문이 가는 이유다. 더구나 조합원들 상당수는 비정규직 챙기기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있다는 소식이다.
사측은 어떤가. 경총은 지난 8일 ‘올해 단협에서 노조측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올 2월10일 노사정이 합의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는 ‘기업은 임금·근로조건·교육·훈련·복지 등에 있어 비정규직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도록 하고…’라는 문구가 엄연하다. 한달이 채 안돼 말을 뒤집은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관심이 없었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겠다.
비정규직 문제로 격돌할 올 노사협상에서 해결점은 없어 보인다. 분규가 터지면 조업이 단축되고 그 불똥은 애꿎은 비정규직에게 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공론화될수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더 고단해지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하겠는가.
[[김회평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