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남일의 80년대 문학의 갈피를 들추며>‘혁명의 길’ 투신한 戰士 시인

김남주(1946~1994). 스스로, 그는 시인이기에 앞서 전사이기를 원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프란츠 파농의 책 제목, 김남주 역)로서, 혁명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가담했고, 재벌 회장의 높은 담장을 뛰어넘었고, 체포되어 15년 징역형을 받았고, 끝내는 혁명의 길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 체 게바라가 하나의 문화 코드, 티셔츠에 새겨지는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듯이, 혁명은 이제 거대한 전지구적 자본의 총공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김남주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여전히 노래한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조국은 하나다’ 일부)

그는 무수한 에피소드로도 살아남았다.

황석영: 그는 노래를 잘 불렀지만, 꼭 반음씩 틀리게 부르는 ‘음치’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꿔 부른 이 노래(동만 독립군가)는 스크럼을 짜고 최루탄을 뚫고 나가는 데는 알맞은 박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석영이 가르쳐 준 노래들은 그렇게 해서 김남주표 투쟁가가 되었다.

백민석: “수강생 하나가 ‘노동자 계급의 애환과 투쟁’을 담은 시를 써갔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당시 그런 시 작풍에는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어서, 비슷비슷한 시들이 지겨우리만큼 많이 씌어지고 발표되던 때였다. 김남주 선생은 아주 간단하게, 그 시가 좋지 않다고 평하셨다…. 시선생으로서의 그에게서 잘 썼다고 칭찬을 들었던 습작품들은 언어 운용의 기본을 잘 지켰던 것들이었다.”

김용택: “형님은 그때 혼자 사는 내가 늘 안쓰러워 여기저기 내 여자를 찾았거든요…. 형님이 그러는 거예요. ‘야, 용택아, 근디 너 무슨 김가냐?’ ‘예, 김해 김간디요.’ ‘이런 니미럴, 왜 하필이면 니가 김해 김가냐?’” 그는 김용택에게 자기 여동생을 소개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김남주도 김해 김가였다.

그는 술판에서 늘 조용히,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래를 청하면 18번인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를 불렀다. “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에/ 기대서서 울 적에…” 그는 느릿느릿, 정말 반 음씩 틀려가며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 노래는 미적으로 전혀 새로운 ‘아우라’를 얻었다.

사람마다 그와 맺은 인연의 모습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직된 이념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든지 인정할 것이다. 그의 시가 너무 전투적이어서 여백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옛 마을을 지나며’전문)

그는 분명히 전사였고, 그런 만큼 시인으로서도 비수 같은 시편들을 남겼지만, 그것들은 결국 그가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소박한 민중의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죽은 지 꼭 10년, 그는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 구묘역에 묻혀 있다. 그곳이 그의 자리다. 그는 화려한 신묘역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