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세상보기>19·20세기 혁명의 계보 ‘의식혁명’ 차원서 재조명

‘혁명’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단어였다. 로마시대에 처음 등장한 ‘레볼루치오(revolutio)’라는 단어는 ‘치받음’ 혹은 ‘뒤엎음(전복)’이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돌을 치운다”는 표현에 쓰였다.

이 단어는 중세까지 천문학과 점성술의 전문용어로 쓰이다가 14세기 서유럽에서 정치영역으로 옮겨져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천년이 바뀌고 21세기인 지금 ‘혁명’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 같지 않다.

독일에서 2000년에 출판되고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혁명의 역사’는 그런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축제, 비폭력, 놀이, 평화 같은 단어들에 열중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혁명’이라는 단어에 혹시 비웃음이나 보내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근대사교수로 오래 재직했던 편저자 페터 벤데(런던 독일역사연구소)는 혁명을 “미래 건설을 목표로 한 개인적 자유의 실현”으로 규정하고 그 틀에 맞추어 인류사의 위대한 혁명들을 ‘의식 혁명’의 차원에서 재조명한다.

따라서 혁명의 딱지가 붙은 몇몇 사건들은 배제되고 제3세계 민중이 유럽과 미국의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한 수많은 민족혁명에서도 소수의 사례만 선택되었다.

자연스럽게 19세기와 20세기의 유럽혁명들에 초점이 맞춰지며 그외에 쿠바혁명, 중국혁명, 문화대혁명, 멕시코혁명, 이집트혁명, 68혁명, 이슬람혁명 등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기존의 고전적인 혁명해석에서 과감한 방향전환을 시도한다.

총 17편의 논문이 수록된 이 책에서 선구적인 ‘혁명’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사례는 ‘영국혁명’(1640~1660)이다. 군주제를 부활시키긴 했지만 의회제도의 확립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탄생시킨 명예혁명(1688~1689)으로 정치적 근대화의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어 모국(영국)과 결별선언을 하고 버지니아 권리장전으로 기본권의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미국혁명(1763~1787)도 ‘성공한 혁명’으로 제시된다. 프랑스혁명의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대접을 못받았지만 미국혁명의 이념은 혁명을 폭력적인 과거의 수단에서 벗어나 이성적 혁명의 지위로 격상시켰으며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이 탄생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편 혁명의 고전으로 여겨지던 ‘프랑스혁명’(1789~1799)은 수정주의적으로 해석된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으로 30년전부터 혁명을 사회 경제적 관계의 근본적 변환이 아니라 사회적 의식의 근본적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해졌고 그것이 프랑스혁명에 대한 기존의 고전적 시각을 밀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계급적 특권사회의 권력체제를 파괴하고 평등한 개인들의 사회를 세웠으나 실제적인 사회구조는 변화시키지 못한 실패한 혁명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파리코뮌(1871), 볼셰비키혁명(1917~1921) 등도 실패한 혁명으로 해석된다. 볼셰비키 유산은 폭력적으로 사회를 동질화시키기 위한 반근대적 강령을 포함하고 있으며 산업주의를 장려하면서 낙후된 상태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는 구호하에 이루어진 독일 재통일 사건을 ‘동독의 89혁명’으로 명명하며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종류의 혁명’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1989년 11월 9일 이루어진 베를린 장벽 개방이후 민주적이고 국가적인 재통일의 성격으로 진행된 이 혁명으로 동독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적 질서를 가져왔고 국가적으로는 독일의 통일과 동독지역의 원상회복으로 이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자본관계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은 현재의 상황에 달려있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역사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줄리에트 미첼은 1966년 여성 주도의 성혁명은 가장 늦게 이루어질 가장 어려운 혁명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혁명(The Longest Revolution)’이라는 책을 썼다.

그러나 영국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가고 현재 독일에서 완성 단계에 있다는 그들의 ‘혁명 해석’이 ‘웃음나오는 것’은 왜일까? 반드시 인류의 절반인 ‘여성 혁명’을 제외시켜서만은 아닌 것 같다. 권세훈 옮김. 유숙렬기자 sl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