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나 결혼식 때 축하 이벤트로 쓰는 폭죽 겉포장에는 경고문구가 적혀있다. ‘사람을 향하여 사용금지’. 당연한 말이다. 화약류는 허공을 향하면 축제의 도구가 되지만, 사람을 겨냥하는 순간 비극의 불씨가 되는 법.
그런데 이어진 문구가 좀 맹랑하다. ‘변태 사용금지’. 변태라면 ‘특이한’ 성(性)취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할 터인데, 폭죽을 변태적으로 사용한다면? 요상한 상상은 말자. 여기서의 변태는 ‘모습, 형태를 바꾼다’는 단어 본래의 의미다. 제멋대로 폭죽을 분해하거나 변형해서 사용하다가 생긴 사고에 우리는 책임 못진다는 제조사의 경고다. 폭죽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까.
폭죽이 제대로 쓰일 때는 아름다운 기억을 남긴다. 미국 독립기념일이나 중국 춘제(春節·구정) 같은 집단 기념행사의 폭죽세례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데 묶어준다. 연인간의 프로포즈, 가족·친지의 다양한 기념일에 분위기를 띄우는 폭죽은 서로의 마음을 이어준다.
그러나 이와는 딴판으로 안좋은 추억을 안기는 ‘폭죽 변태족’들이 요즘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올 여름휴가 기간에도 주요 해수욕장에서는 새벽 2~3시까지 시도때도 없이 터뜨려대는 폭죽 소음에 주민과 피서객들이 잠을 설치고 있단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죽을 발사하는 바람에 크고작은 부상도 속출하는 모양이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바닷가, 유원지, 공원에 머물지 않는다.
며칠전 휴가를 맞아 지리산 달궁마을을 찾았다. 하늘을 가릴만한 무성한 원시림, 깊은 소(沼)과 이끼 덮인 바위가 말해주듯 지리산 중에서도 호젓하기로 손꼽는 곳이다. 휴가 첫날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갑자기 따발총 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깜깜한 밤하늘 한편으로 불꽃이 치솟았다. 귀와 눈을 의심했지만 폭죽이었다. 심산유곡의 시끄러운 불꽃잔치는 30~40분간 계속됐고, 그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등산객들 사이에 “야호”소리가 없어진 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지리산 같은 깊은 산에, 그것도 심야에 벼락치듯 들려오는 폭음이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폭죽을 마음대로 개조하는 변태도 위험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을 괴롭히는 변태들은 더 큰 문제다.
[[김회평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