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부’는 마음수행이었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놓친 마음을 다잡는 일일뿐이다.”―맹자(孟子) 중 고자(告子)상(上)

올해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아이들은 공부라는 ‘폭압적 권력’에서 해방된 걸까? 아니다. 낙방생은 지난한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졌고, 합격생에게는 고등학교 4, 5, 6, 7학년이 기다리고 있다. 학점취득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그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감각한 언어의 하나이자, 가장 재미없는 말이 된 듯한 공부, 공부, 공부 그런데 요즘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과 외국어 구사능력, 새로운 시대감각을 따라잡지 못하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은 위협받는다. 이처럼 공부는 언제부턴가 지식을 ‘습득’해야하고 ‘응용’해야하는 ‘멍에’로 변질됐다. ‘삶’과는 별개로 사회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타인을 딛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 자라잡았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정말 공부란 무엇일까. 저자(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교육학박사로, 한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옛 사람들의 공부에서 해답을 구한다.

교육이 사람의 멍에가 된 것은 서구 근대교육의 영향이 크다. 교육의 과학화를 내세운 세련된 서구의 교육이론들은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인간을 규격화하고 그것이 인감됨의 정도(正道)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했다. 삶의 수단적 도구로서 교육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삶의 총체적 모습을 고민하는데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삶을 희로애락이 충만한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리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아시아의 유학(儒學)에서 공부(工夫)는 원래 공부(攻扶)의 뜻과 형태가 축약된 것이다. 공(功)은 ‘to achieve’, 부(扶)는 ‘to support’ 또는 ‘to aid’의 뜻. 즉 ‘무엇 무엇을 도와 성취한다’는 의미이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편에는 공부의 네 가지 방법에 대해, 잘못을 미연에 방지하는 마음상태를 의미하는 예(豫), 때에 따라 적절하게 깨달음을 얻는다는 시(時), 자기의 직분과 능력을 뛰어넘어 무리를 하지 않는 겸손을 뜻하는 손(孫), 항상 끊임없이 서로를 본받으며 몸을 닦는다는 마(摩)를 제시한다. 곧 공부란 모든 인간의 삶에 깃든 활동이며, 그 활동의 승화에 작용하는 ‘신성한 노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부를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사는 게 공부이며 단지 어느 정도 공부에 충실하느냐가 삶의 무게와 깊이를 결정한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올바르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공부의 경지이다.

맹자에게 공부는 인간의 착한 본성을 찾고 그것의 확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의 착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인간은 모두 이같은 사단을 구유(具有)하고 있지만 각기 기질이라는 특수성도 갖기 때문에 다양한 존재적 양태를 띤다. 왜 공부하는가? 착한 본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맑게 지속해가려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의 완성해 체화(體化)된 사람이 ‘군자’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조상들이 해온 유교의 공부란 불교나 기독교 등 종교에서 얘기하는 수행(修行)과 다르지 않다. ‘착한 본성’을 닦고 지속하는 것은 바로 종교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갖고 있는 수행의 과정이자 목적인 것이다. 수행이 어찌 어느 시절에만 하는 것인가. 평생을 두고 하는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를 인생의 긴 여정을 거쳐 진행되는 일련의 예술과정이라고 표현한다.

동양 고전 ‘대학(大學)’에선 어른들의 삶속에서 지속해야 할 공부에 대해 세가지를 제시한다. 선천적인 착한 인간성을 밝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작업이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저자는 자신을 한문의 세계에 눈뜨게 해준 권우(卷宇) 홍찬유(89) 선생에게서 ‘공부하는 사람’을 본다고 얘기한다.

“팔순 노인이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돋보기 확대경을 들고, 수십번 꿰매고 테이프로 붙인 너덜너덜한 사전을 곁에 두고, 한문 경전이나 문집을 읽고 있다. 지인이 방문하면,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반가워 어쩔줄 모르며, 먹고 마실 것을 찾아 내놓는다.”

그 스승이 친히 당부한 말씀에 우리 모두가 근대 이후 잃어버린 공부의 목적과 방법이 들어있다.

“쉬지 말고 공부해라. 끝까지 하는 녀석이 인간되는 거다.”

엄주엽기자 ejy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