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상 바꾸기’는 어렵다

법은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력을 갖는다. 때문에 만들기도 어렵고 한번 만들면 없애기도 어렵다. 이런 원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사람의 자유로운 사회 활동을 구속할 법령과 규정을 만드는 게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또 법을 없애면 거기에 의존하던 사회 질서도 무너질 걸 알면서 어찌 그 법을 쉽게 없앨 수 있겠는가.

지난 여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베풀어진 만찬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건배를 하면서 “세상을 바꾸자”고 했다. 물론 이런 건배사는 우리 사회의 급진파라는 민노당 의원들이 제의한 것이고 노대통령은 따라 부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후 우리 주변에 몰아 닥친 ‘세상 바꾸기’물결은 실로 거세기 그지없다.

지난 6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하기 위해 여야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의장석을 차지하기 위한 육탄전 끝에 여당의원들은 손바닥을 두들겨 의안 상정을 선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결국 그래봤자 아무 효력이 없다고 하루만에 판정이 나긴 했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앤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만천하에 증명한 사건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법이다. 이 법은 북쪽에 자유와 민주를 탄압하는 체제가 존속하는 한 없앨 수 없다. 냉전 종식이니 남북대화 진전이니 과거의 불미스런 악용이니 하는 이유들보다 우리의 체제와 가치와 신념을 수호해야 할 이유가 더 절실하다.

폐지될 운명인지 변경될 운명인지 불분명한 상태에 놓인 또 하나의 ‘세상 바꾸기’가 호주제 폐지 문제다. 호주제 폐지가 힘든 일이라고 말하면 여성의 권리를 억누르는 보수주의자로 몰리겠지만,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단지 호주제에 의해 유지되던 사회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 도저히 짐작이 안된다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이 우리의 가족제도를 발전시킬지 혼란에 빠트릴지 예측이 안된다는 점이다. 호주제가 유지돼온 지금까지도 여성의 권리는 착실히 신장돼 왔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어느 개인도 사회도 피해 갈수 없는 시대의 진운이다. 만약 여기에 주마가편을 하고 싶으면 호주제 폐지 이후에 벌어질 국민 생활의 불편을 극복하는 방법을 숙지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 여야의원들이 합심해서 나선 ‘세상 바꾸기’의 한가지가 사형제 폐지안이다. 이것 역시 국회에서 논의중이긴 하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한다. 사형제가 폐지되면 범죄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아직은 증명된 게 아니다. 따라서 이것도 저것도 못할 바에는 사형수의 인권이라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가 폐지되면 남을 죽여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극악한 범죄자라도 비록 종신형으로나마 감옥 생활을 즐기며 천수를 누리게 된다. 이런 사회가 과연 올바른 사회일까.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그것이 좋은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무 연관도 없는 부녀자를 닥치는대로 20명씩이나 죽인 살인마 유영철이라도 반드시 살려 주어야 하는 게 이 사회의 정의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면 오늘이라도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겠다라고 말하는 국민들은 많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무슨 법을 없애서 세상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이미 한국인들은 그 법에 익숙해 있으며, 그 법이 있어야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몇몇 사람들은 법을 없애서 세상을 바꾸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이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야할 분야는 따로 있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구출하는 문제, 좋은 교육을 받고도 백수 건달로 지내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문제, 간교한 지혜 앞에서 정직과 신뢰의 미덕이 조롱당하는 입시제도 개혁 등이 바로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그 일들일 것이다.

[[김성호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