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기자의 스타이미지 뒤집기>지적이기보다 좋은 며느리감

학벌철폐운동이 한창이고 서울대해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학벌이다.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명문대 출신 연예인들은 ‘서울대 프리미엄’이니 뭐니 해서 그 덕을 적잖게 본다. 물론 ‘서울대 프리미엄’이 연예생명을 평생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끝끝내 극복되지 않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가령 서울대 연예인들은 범생이 스타일이라 연예인의 끼는 부족하다는 속설같은 것 말이다. 가수 시절에는 특출나지 못했으나 기획자가 돼서는 노골적인 흥행사로 확실히 변신해 놀라움을 안겨준 이수만을 제외하고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요란한 스포트라이트만큼 대성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이런 속설들을 뒷받침한다(이수만의 경우 그의 기획사 SM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기까지 방송사 PD들과 호형호제할 수 있는 학벌이 큰 힘이 됐다는 지적들도 많다).

SBS 월화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이하 ‘러브스토리’)에서 하버드 유학생 출신의 여의사로 출연중인 김태희도 서울대 연예인의 하나다. 요즘 젊은 배우들과 다른 단정하고 깨끗한 외모도 주효했지만 서울대 재학생(의류학과)이라는 배경도 그의 급성장에 한몫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데뷔작 ‘스크린’때는 서울대 출신의 완벽한 미모의 신인으로 소개됐고(서울대 여자들도 이렇게 예쁘고 여성적일 수 있다는 놀라움), ‘러브스토리’는 ‘서울대생 하버드 가다’라는 컨셉트로 집중 홍보됐다(이 무렵 대중저널은 김태희가 바쁜 일과 때문에 같은 ‘서울대 치대생’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까지 대서특필했는데, 이는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서울대 콤플렉스’를 잘 보여준다).

김태희는 여성으로는 거의 최초의 서울대 출신 연예인이기도 하다(보다 ‘교양인적’ 성격이 강조되는 MC나 아나운서를 빼고 탤런트, 영화배우 중에 서울대 출신 여성은 전무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김태희의 서울대 배경이 소비되는 방식인데, 이는 그를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프로페셔널한 여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신한 현모양처감으로 보이게 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를 순수하고 깨끗한 고전적 미인으로 부각시키는 CF들이 그렇고, ‘며느리감으로 삼고 싶은 연예인 1호’로 그를 올려놓는 설문조사 결과들이 그렇다.

요컨대 김태희에게 부여된 이미지는 공부 잘하고 얼굴도 예쁜 ‘양가집 규수’라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이지만 드세거나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특히 남성들앞에서)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지 않는 조신한 미인. 그런 고전적 여성상의 구현이 김태희가 가진 대중적 호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러브스토리’에서 김태희가 연기하는 여의사 수인은, 전문직 여성으로 늘 털털하고 중성적 특성이 강조되는(이 또한 스테레오타입화의 위험이 있지만) 여느 드라마속 여의사들의 전형과 거리가 있다. 김태희는 흰 가운을 입고 있어도 여성적 매력을 감출 수 없고, 그 여성적 매력의 정체는 고전적이고 참한 것이다.

이는 서울대 출신 남성연예인들이 곧바로 지적 이미지로 포장되거나(‘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정진영이나 지식인 역할에 단골 캐스팅되는 감우성,데뷔초기 지적인 개그를 구사한다는 평을 받은 서경석) 아니면 스스로 가볍고 주책맞은 이미지를 꾸며내거나(최근 부쩍 오락프로의 튀는 패널로 나오는 안재환), 혹은 엘리트 이미지를 180도 전복시키는 파격을 시도하는 것(연대출신의 박진영)과 다르다. 학벌(학력)이 지적 능력(지성)의 한 바로미터라고 할때, 남성스타들의 서울대 배경은 그에게 지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지성을 깨뜨려 파격의 묘를 더하는 장치로 작용하지만 여성스타들에게는 좋은 며느리감이나 좋은 배우자감의 한 조건쯤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 예쁘고 학벌도 좋고 게다가 집안도 좋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결혼시장에서 최고의 완벽한 신부감으로 꼽히는 것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여성스타들의 학벌, 지적 능력은 그 자체가 독립적 자질로 평가받기보다 성적인 조신함, 혹은 2세를 위한 좋은 유전자의 보유자로서의 규수감이라는 맥락에서 가장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순수 얼짱 김태희는 보여준다.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