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죄인 이상락을 위한 변명

지난주말 오후, 경기도 여주교도소. 수인번호 301번 이상락 전 국회의원과 마주 앉았다. 면회실은 따뜻했지만 푸른 수의 속의 그는 시려보였다. 한달전 대법원에서 1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성동구치소를 거쳐 이곳에서 복역중이다. 초등학교 졸업자가 고졸 행세를 했다는 이유다. ‘죄질이 나쁘다’며 받은 1심 징역 1년6개월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이다.

―모든 것이 너무 바뀐 것같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어쨌든 허위 학력이라는 원인제공을 했으니 다시 태어나는 기회로 삼겠다. 아침 6시반 기상이지만 일찍 눈이 뜨인다. 성경 등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고 있다. 부족함을 채우자면 1년의 수감생활이 결코 길지 않을 것 같다.”

―많은 회한이 남을 법하다.

“우선 선거구민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다. 그래도 감옥 밖에서는 바로 볼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진정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왜곡된 학력·학벌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일도 하고 싶다.”

―재판에 대해 할 말은 없는가.

“큰 소외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 눈 앞이 캄캄했지만 계획되고 의도된 거짓말은 아니었다. 법의 본질과 현실에 많은 괴리감이 있음을 절감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사회적 벽을 확인한 것도 사실이다.”

―출감 후의 계획을 생각해봤나.

“정치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번에 벗겨진 나를 확인했으니 진실의 옷으로 갈아 입고 자신감 있게 살아갈 결심이다. 과거 벌였던 빈민운동은 생존권 차원이었다. 이제 거기 머무를 수는 없다. 사회전체를 아우르는 차원 높고 체계적인 운동을 해나가려 한다.”

그는 이미 나이 50을 넘겼다. 충남 서천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 비인가 재건중학교를 마쳤다. 역시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농사를 짓다 상경해 공장 노동자, 과일 노점상, 목수 보조 등 막노동을 하는가 하면 포장 마차를 운영하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씨의 법정 최후 진술서는 한 금형공장 체험을 적고 있다. 이 공장에서 3년간 열심히 일하자 사무직으로 발령이 났다. 그 뒤 학력이 재건중 졸업으로 알려지자 다시 임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사표를 내던지고 그는 사회를 원망하며 울었다. 그것이 그의 구체적 학력 외상(外傷)의 서곡이었던 셈이다.

그는 이후 경기 성남에서 주민교회 이해학목사를 만나 빈민운동에 참여한다. 이때는 학력이나 학벌이 필요없었다. 문제는 91년 시작된 정치활동이었다. 이미 ‘고졸’로 통해 사실을 밝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자체 의원을 거듭하며 선관위 자료에는 ‘고졸’, 홍보물에는 학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허위학력은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거졌다. 처남이 만든 위조 고교졸업 증명서도 뜻하지 않은 말썽을 일으켰다.

그래서 죄명은 선거법 위반과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다. 그럼에도 많은 선거구민들은 그의 성실성과 진정성을 믿고 있다는 게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허위학력 문제는 이미 선거 10여일 전에 드러나 유권자 심판을 받았다”며 “1년의 징역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와 다른 의견도 없지 않다.

문제는 학력·학벌사회의 굴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학벌없는 사회’운동을 펼쳐온 김상봉 정책위원장은 “이의원의 경우는 이 땅의 학력·학벌사회가 얼마나 견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학력과 학벌공개를 강요하는 사회야말로 인권침해의 폭력사회이자 잔인한 사회”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런 점들이 무시된채 그에게 중형이 선고된데 대해 분노마저 느낀다”고 강조했다. 유죄는 이 차별의 사회라는 결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학력을 적어내라는 기억을 더듬는다. 그 곤혹스러움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현명한 재판관이 있어 ‘이 사회를 감옥에 보내라’는 판결을 내릴 것인가.

[[김광원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