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기자의 현장속으로>‘친환경 축산 실천’ 화성·산청 양계마을

‘똑-똑’ ‘모이입니다’ ‘어-이’

유정란을 만드는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에서는 닭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산란상자 문을 열 때 닭들에게 노크를 하거나 양해를 구한다. 말없이 들어갈 때는 ‘안녕’하고 눈짓으로라도 인사를 건넨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야 양계를 할 자격이 있다.’ 이같은 심성과 철학으로 양계를 하기 때문에 닭들이 스트레스가 쌓일 일이 없다.

닭의 해인 을유년. 행복한 닭들이 사는 산안마을을 찾았다. 발안 인터체인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8가구가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안 마을이 나온다. 무소유, 무아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야마기시즘 실현지(實現地)’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농법의 씨앗을 뿌린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철학을 이어받아 살아가는 곳을 이곳 사람들은 실현지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 실현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곳 산안(山岸〓야마기시)마을이다.

닭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은 이 마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솟구쳐 나온다. 또 쾌적한 환경속에서 자라고 있는 닭들은 사람이 가까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낯선 사람 앞에서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차분한 닭들과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룬다.

“산안마을에서 생산하는 유정란은 건강한 생명이 태어날 요소를 전부 갖춘, 사는 힘이 넘쳐흐르는 알입니다. 계사의 지붕쪽에 달린 천창(天窓)은 1년 내내 햇빛이 잘 드는 정밀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요. 양지쪽에서 닭들이 기분좋게 모래욕을 하는 등 태양을 흠뻑 쬐기 때문에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마을의 촌장격인 윤성렬(60) 산안마을 영농조합 대표는 아마 산안마을 닭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유기농산물을 더 많이 먹고 자랄 것이라고 말한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핵심은 닭들을 억지로 키우고 억지로 알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닭들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크도록 만드는 것이다. 계사에서도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계분이 풀, 볏짚, 왕겨, 톱밥, 굴껍떼기 등의 혼합물과 함께 미세하게 발효되기 때문이다.

윤씨는 지난 84년 화성에 웅지를 튼 산안마을은 ‘돈이 필요없는 마을’ ‘화를 내지 않고 언제 누구와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등과 같은 이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산안마을은 8가구 34명. 이중엔 한국인 신랑·일본인 신부 커플도 세쌍이나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한가족이다. 저마다 농사담당 채소부, 닭을 키우는 양계부, 마을의 생산물 유통을 담당하는 공급부, 아이들을 돌보는 학육부, 생활부 등에 배속돼 일한다. 하지만 누구도 월급을 받지 않고 이러한 일에 강제나 규율도 없다. 마을 한가운데는 작은 창고가 하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품, 학용품, 과자류 등이 가득 쌓여 있다. 필요하면 누구나 꺼내서 쓸 수 있다. 목욕탕에도 샴푸와 비누, 치약과 소금 등이 놓여있지만 수질오염을 유발하는 샴푸를 쓰느냐 안쓰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지난 87년부터 18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연주(43)씨는 “5월5일에는 각 지역 단체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와 같이 나누고, 안쓰는 물품들을 가져와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하는 초록축제가 열린다”고 소개했다. 이 행사는 주차 정리를 도와주는 해병전우회에서부터 매향리 주민이나 환경단체 사람들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한마당이라고 귀띔했다.

윤 대표도 오는 2월11일 한·일의 젊은이들이 산안마을에 와서 돈이 필요 없는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젊은이를 위한 일체 캠프’를 열기로 하는 등 세계를 향해 열린 프로그램을 잇달아 열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 산청의 안솔기 마을에 사는 최세현(44)씨도 닭들이 행복해야 주인도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간디학교 뒤편에 있는 닭장에는 ‘2004.1.5生’, ‘2004. 1.16生’등 닭의 생일이 걸려있다. 사람에게 생년월일이 있는 것처럼 닭들의 생일을 기억해 성장단계에 맞게 기르겠다는 발상에서다. 닭장 바닥이 풀이 깔린 숲속길처럼 푹신하다. 부엽토에 왕겨를 섞어 30㎝두께로 깔아놓았다. 최씨는 닭똥을 자루에 담는 일이 즐거운 행사중 하나다. 이 곳에서는 ‘닭똥을 치운다’고 하지 않고 ‘계분을 수확한다’고 말한다. 부엽토에서 자라는 미생물이 닭똥과 오염원을 분해해 훌륭한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최씨의 양계방식도 야마기시즘 농법이다.

이 곳 닭장도 넓어 닭들이 충분히 운동을 하면서 자란다. 아침마다 닭들에게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

충북 제천의 한 대기업을 다니다 2000년 11월 이 안솔기 마을로 귀농한 최씨는 “닭똥이 밭으로 나가 배추와 상추 등 다른 생명체를 키우고 이 풀들이 다시 닭에게 가는 등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뤄진다”며 “이를 통해 따스한 생명이 도는 유정란을 수확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진주 시내 300여 회원들에게 유정란을 직접 배달한다. “직거래는 사람농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직거래를 통해 농사짓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건강성이 살아있지요. 회원들을 초청해 계란 꺼내기, 사료 주기 등의 체험 행사도 갖고 있습니다.”

숲해설가인 최씨는 소비자들이 생산지인 안솔기 마을을 방문할 때 숲 생태계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려주기도 한다.

경남 함양 청미래 마을과 경남 하동 옥종면 자연교회 등 인근 지역에도 최씨의 양계 방식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최씨는 항생제나 산란촉진제 등 첨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 곡물사료를 이들과 공동으로 구매한다. 그는 안솔기 마을의 공동대표 역할도 맡고 있다. 안솔기 마을에서는 최근 공동사업으로 경옥고를 만들고 있다. 백봉령, 지황, 벌꿀, 인삼을 가마솥에서 나흘간 고아서 만든다. 부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마을공동대표 김명철씨가 제안해 시작했다. 사업을 한 달에 두번 불을 때는데 참여하는 가정에는 부업이 되고 마을 공동사업 기금을 조성하는데도 보탬이 된다.

최씨는 “주민들이 자연으로 순환되는 생태 화장실을 만들어 쓰려고 해도 지자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에는 정화조를 묻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불합리하다”며 “정화조에는 생활오수와 인분이 함께 들어가야 정화가 가능한데, 이는 수세식을 안쓰는 우리 마을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산안마을이나 산청 안솔기마을에서처럼 닭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행복한 닭들이 고소하고 진한 양질의 유정란을 선물로 되돌려준다는 사실은 가축관련 질병이 만연한 지구촌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