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기자의 현장속으로>안동-문경의 匠人들

흙과 함께 살고, 일에 몰입해 희열을 맛보는 삶이 아름답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참다운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질박함이 느껴지는 한국의 장인들은 가난 속에서도 사회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억척스레 한우물을 팠다. 고집스럽게 한평생 장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서 꺾일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흙과 불, 쇠에 미쳐 살아온 장인들은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세계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남몰래 걱정한다.

농촌이 공동화되면서 살고 싶은 마을이 아니라 ‘살 수밖에 없는 마을’로 바뀌고 있는데다 전통문화는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다. 양반문화의 본고장인 안동 문화권에 속한 경북 안동시와 문경시 곳곳에 흩어져 사는 장인들을 통해 은 올곧게 뿌리가 내린 토착문화의 다양한 양태를 살펴봤보여주는 프리즘 그 자체다. 이들 도시 행정당국자나 기업인들은 예외없이 장인을 섬기고 받들어 모신다. 두 도시 모두 장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면서 지방을 살찌우고 있다.

고등어 간잽이 이동삼씨

안동 간고등어는 간고등어를 만드는 실명의 제조자인 간잽이(염장처리하는 사람)가 직원중에 최고 연봉을 받는 전문가다.

안동시 일직동에 있는 안동 간고등어 공장에서 만난 간잽이 이동삼(65) 공장장은 50년 가까이 간고등어를 다뤘지만 지금도 고등어를 만질 때가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간고등어는 안동사투리로 ‘간고디’라고 한다.

“숱한 상처가 얼룩졌지만 한평생 동거동락을 해온 내 손이 내 딸이고 내 아들이지. 이 간고디를 엄마 아버지가 잡숫고 우리 아들이 먹는다. 항상 내 머리에는 그 생각뿐이라…. 이제 남북통일이 되면 간고디 한궤짝을 지고 북한으로 올라갈 참이야.”

안동은 바다에서 70㎞나 떨어진 내륙 지방이다. 저장을 위해 멀리 영덕에서 오는 간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다음에 소금을 한주먹씩 뿌리는 일을 염장을 지른다고 한다. 이씨의 염장기술 덕에 지역 간고등어는 지역 명품을 넘어 전국 브랜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안동지역에서 생산되는 간고등어는 올해 매출 300억원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제조업 불모지인 안동에서 최대 산업으로 급부상했다.

안동 간고등어가 성공한 뒤 유사 제품이 난립함에 따라 안동 간고등어는 포장에 초립을 쓴 채 간고등어를 든 이동삼씨의 사진을 붙이고 있다. 세계 7개국에 그의 얼굴이 알려지고 있지만 그의 성공 비결은 지금도 정성과 겸손함이다.

현재 안동 간고등어 공장장을 맡고있는 그는 뭐든지 한가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새벽부터 고등어를 만지지만 “늘 서로 돕는다는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그는 “내가 조금 속아야 한다. 이기면 안된다. 항상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독특한 상인정신을 되풀이해 들려주고 있다.

문경窯 막사발빚는 천한봉씨

안동을 거쳐 문경 운달산 성주봉 아래 자리잡은 문경요를 찾았다. 천한봉(72) 명장은 외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한국도자사를 빛내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칠십이 넘은 고령에 지금도 치열하게 도자기와 씨름하는 천 명장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평생 흙을 만지며 일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흙에 기가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산도자기는 숨을 쉽니다. 차를 마시면 그릇에 어떤 모양이 생기고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감상하는 차인들은 그릇에 땀이 흐른다고 하지요.”

그는 살아있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50년 이상 장작으로 불에 변화를 일으키는 전통가마를 고집한다.천 명장의 작품은 일그러진 실패작이 오히려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조선 막사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도자기는 바다를 건너가 일본의 제일급 보물이 된 조선 막사발 이도차완과 거의 같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가 만든 막사발은 진주와 문경의 흙을 1대 1로 섞은 점토로 빚는다. 초벌 구이가 끝나면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한다. 재벌구이 후 유약이 수축되고 나면 실핏줄 같은 금이 가게 된다. 그 금 사이로 찻물이 배게 되면 운치를 더한다. 천 명장의 온유한 성품만큼이나 작품에 질박함이 묻어나고 자연의 운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의 조부는 한말 이강년 선생과 함께 의병운동을 했던 천보락 장군이다. 하지만 그는 부친이 일본에 징병으로 끌려가는 등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이제 천 명장의 작품은 일본에서 120차례나 전시회를 가지면서 성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가 만든 막사발은 일본 등에서 700만원을 호가한다.

전통한지 맥잇는 김삼식씨

문경 새재 밑동네 전통문경한지를 만드는 김삼식(63)씨도 외곬인생이다. 한평생 우리 한지 문화를 지켜온 김씨는 자신이 만든 한지 한쪽을 내밀며 당겨보라고 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는다. 손만 대면 찢어지던 한지를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찬찬히 살펴보니 미려한 한지밑에 살아있는 숨결과 견실한 섬유결이 느껴진다.

그는 50년 이상 한지의 전통을 이어왔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다 귀향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5대째 닥장이가 되기로 결심한 막내아들 김춘호(30)씨와 함께 진짜 전통한지를 만들고 있다. 어김없이 아침 7시부터 닥나무를 삶고 벗긴다. 전통한지는 반드시 우리땅에서 나온 1년생 어린 닥나무를 쓴다. 닥나무 껍질의 외피를 벗길 때 사용하는 가성소다를 거의 쓰지 않고 직접 칼날로 벗겨낸다.

“하루 15~16시간을 닥나무를 긁어내고 삶기위해 7~8시간씩 불 앞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있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요. 전통 한지 방식으로는 산업화에 성공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지요. 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전통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말이죠.”

아버지로부터 전통한지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춘호씨도 도자기 장인들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처럼 앞으로는 닥장이의 진짜 전통한지도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 전통한지의 최대 위협은 닥나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춘호씨는 150년된 문경전통한지의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한 그루의 닥나무를 심는다. 1000평의 작은 닥나무밭 땅뙈기지만 이것이 씨앗이 돼 앞으로 전통문화의 재료가 될 닥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길 희망하면서….〈끝〉

전국부차장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