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BC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은 주인공 4명을 모두 스타로 탄생시켰다. 원톱 코믹배우로 진가를 발휘한 김선아는 물론이고 ‘아일랜드’에 이어 확실한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한 현빈, 밉지 않은 연적 역할로 댄스가수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말끔히 지워낸 려원이 그렇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려원을 사랑하는 미국인 의사 헨리로 출연한 다니엘 헤니. 주로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지의 모델로 활동하다 박명천 CF감독의 눈에 띄어 전지현, 김태희의 상대역으로 CF에 얼굴을 내비친 것이 전부였던 헤니는 이 드라마 한편으로 스타탄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시청자의 뜨거운 관심속에 극중 비중이 커졌고, 네티즌들은 다니엘찬가를 만들어 부를 정도다. 려원과 ‘안녕 프란체스카’에 동반출연했고 두사람이 함께 찍은 음료CF는 드라마 마지막회 방영직후 전파를 탈 예정이다. 헤니는 현재 귀네스 팰트로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국내 의류CF에 상대역으로 낙점돼 영국에서 촬영중이다.
헤니의 이같은 갑작스러운 부상은, 일단 그가 맡은 헨리 킴이라는 극중 캐릭터 탓이 크다. 병으로 진헌(현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희진(려원)의 주치의로서, 희진을 따라 미국에서 온 헨리는 애정을 강요하지 않는, 쿨한 연인이다. 헨리는 희진의 마음이 진헌에게 가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희진과 진헌의 애정을 방해하거나 연적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소유욕과 정복욕이 없는 애정이다. 보통 삼각관계의 로맨스물이 두 연적의 피튀기는 승부게임인데 반해 애초부터 승패에 관심없어 보이는 헨리의 모습에, 오히려 네티즌들이 나서서 희진과 헨리를 맺어주라고 주문할 정도다.
헨리는 동시에 감수성의 연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분변화에 민감한 헨리에게 희진이 “너는 어떻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니”라고 말하는 대사는 왜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열광하는지 잘 보여준다. 희진은 진헌과 함께 잘 다니던 식당이 없어진 것에 진헌이 무감각하자 “헨리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헨리는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헨리는 여성들이 중시하지만 남자들은 무감각한(아니 그렇게 훈련받은) 감수성의 촉각으로, 여성과 더불어 추억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연인인 것이다.
그러나 헤니의 인기 뒤에는 이런 내적 요인 못지 않게 외적인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희진에게 보낸 비디오 편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회부터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의 이국적이고 세련된 외모였다. 이후 그가 실제로 혼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알려진대로 헤니는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혼혈이라는 배경이 작용하는 방식인데, 그에게 혼혈이라는 배경은, 그간의 혼혈연예인들에게처럼 강고한 혈통주의적 민족정서에 위반되며 그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회적 편견의 덩어리거나 역사적 비극의 결과물이 아니다.(그간 한국사회의 혼혈은 대부분 전쟁, 분단 등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었다)
그에게 혼혈은 세련되고 이국적인 매력의 징표이자 국제인의 표지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사회 혼혈의 뿌리깊은 트라우마인 역사성이 제거됨으로써 그의 혼혈 이미지는 포스트 모던 사회의 문화적 트렌드인 동서양 퓨전, 무국적성의 매혹으로 소비되는 것이다.(이런 무국적성, 국적불명은 다인종 잡종문화의 상징인 빈 디젤 같은 배우가 해리슨 포드의 아메리칸 히어로 자리를 물려받는 등 전세계적 현상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무국적성의 아이콘으로서 헤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대사하는데 그것에 대해 시청자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극중 캐릭터나 실제 헤니나 전부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 아니 오히려 헤니와 려원 커플이 인기를 끄는 이유의 하나로 두사람의 자연스러운 영어연기가 거론될 정도다. 이들의 어색하지 않은 영어연기장면은, 그간 한국드라마에서 영어장면이 나올 때 시청자가 느꼈던 일말의 불안감과 민망함(저 배우의 영어발음이 너무 이상하거나 영어를 잘못하고 외워서 하는 티가 나면 어떡하나 같은)을 일시에 씻어버린다. 그의 자연스러운 영어연기에 대중이 호응하는 이면에는 한국인 특유의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을 잘 섞어놓은 듯한 이국적 외모에, 마초적 승부욕이 없는 감성적인 연인, 거기에 영어에 대한 민족적 콤플렉스나 강박증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는 토종영어 구사력까지 갖춘 새로운 연인. 그것이 바로 무명의 헤니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cool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