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기자의 스타이미지 뒤집기>정려원 꾸밈없는 ‘나’를 연출 시청자들 ‘기립박수’

가수 출신 연기자들에 대한 품평이 활발하지만, 최근 ‘내이름은 김삼순’이라는 확실한 출세작을 챙긴 정려원만한 성공사례는 당분간 없을 듯하다. 특히 여가수 출신 연기자로 대상을 좁히면 더욱 그렇다. 이효리 유진 성유리 장나라 등이 연기에 도전했고 여전히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려원만큼 안티없이 변신에 성공하고 성장가능성까지 높은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정려원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인기를 몰아 다음달 시작하는 MBC 새 미니시리즈 ‘가을소나기’(가제)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4인조 댄스그룹 샤크라 출신인 정려원의 성공적인 변신 뒤에는 기대이상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함께 ‘안녕 프란체스카’ ‘내이름은 김삼순’ 등 가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새로운 드라마와 새로운 캐릭터를 만난 행운(혹은 그녀의 남다른 선택)이 숨어 있다. 특히 그에게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확실히 안겨준 ‘김삼순’에서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쿨한 부잣집딸 유희진을 연기해 관록의 배우 김선아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유희진 역은 가난한 연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악행을 일삼는, ‘지는 것은 못 참는’ 못된 부잣집딸이라는, 멜로의 전형적인 악역과는 다른 캐릭터. 세간에 화제가 됐던 다니엘 헤니와의 영어대사 등 국제적 감각, 뚱녀 삼순과 달리 날씬한 몸매에 무엇을 입어도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외모, 결핍을 모르고 자라 매사에 당당하고 위축없는 인물로, 특히 계층적 적대감의 반영으로써 ‘부잣집딸’이라는 도식에서 한참 벗어난 인물이다(사실 ‘김삼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인데, 노처녀 뚱보 김삼순은 당연히 가져야할 콤플렉스를 씩씩하게 떨쳐내고, 정려원은 몸이 약하다는 것 외에는 일절 콤플렉스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요컨대 정려원은 콤플렉스 없는, 그러나 그때문에 콤플렉스 덩어리인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선하고 당당한, 미워할 수 없는 귀공녀라는 것이다. 부잣집딸에 대한 이런 이미지의 변화는 TV드라마가 전형성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에 대한 사회적 선호와 갈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려원이 이처럼 쿨한 부잣집딸(‘김삼순’), 혹은 허영기 넘치는 얼짱 뱀파이어(‘안녕 프란체스카’)라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해외파 출신의 스타일리시한 댄스가수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정려원은 두 드라마에서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때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란 다분히 역설적인 것이다.

섹시하거나 요정 같은 외모로 인기를 끈 여가수들이 연기에 진입할 때 화려한 가수 프리미엄을 덜어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장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달리 정려원은 자신이 가진 기존의 이미지와 매력을 브라운관으로 그대로 끌고왔고, 그만큼 꾸밈없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섹시아이콘 이효리가 데뷔작 ‘세잎클로버’에서 털털한 공장근로자 역을 자처했다든지 SES시절에는 귀공녀 이미지가 강했던 유진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러빙유’ 등 드라마에서는 일관되게 순박하거나 억척스러운 시골처녀를 연기하는 것과 달리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정려원 자신을 연출없이 보여주는 전략이 오히려 꾸밈없는 연기로 시청자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