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굴곡의 100년을 넘어>이념-지역-세대-노사 등 ‘갈등 60년’

광복 60년사(史)는 갈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공간의 이념 갈등과 식민잔재 청산 갈등에서 출발, 최근의 대통령 탄핵 갈등과 복잡다기한 이익 갈등에 이르기까지 1945년 8·15 해방 이후 한국사 연표에는 유난히도 격한 갈등의 흔적이 담겨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60갑자(甲子)를 여는 현 시점에서 보다 세련된 갈등관리 모델과 관용의 문화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60년 갈등사=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처럼 장기간 한국 사회를 옭아맨 갈등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핵심 갈등에도 변화가 있었다. 1945년 해방 이후의 핵심 갈등은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념 갈등과 식민잔재 청산 갈등이 부각됐다. 이념 갈등은 1950년 6·25 전쟁으로 이어져, 1950~60년대는 남북 체제갈등이 다른 모든 갈등을 압도했다.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된 1970년대는 산업화 갈등의 시대였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는 민주화 갈등이 정점에 달했다. 6월 항쟁 이후는 갈등의 다원화, 전면화의 시기다. 군부 권위주의에 억눌려있던 각계각층의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노사 갈등, 민주화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 등 ‘오래된 갈등’과 세대 갈등, 개발-보존 갈등, 노-노(勞-勞) 갈등과 같은 ‘새로운 갈등’이 한국 사회를 휘감았다.

◈유난히 격한 갈등의 원인=비교적 최근의 대통령 탄핵 갈등과 보혁(保革) 갈등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갈등은 서로 맞부딪혀 깨지고 마는 격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압축적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 교수는 “서구는 200년에 걸쳐 경험한 각종 갈등들을 우리는 60년간 집중적으로 소화해야 했다”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지역 갈등과 이념 갈등의 경우처럼 정치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이를 악용한 것도 한국 사회의 갈등이 유난히 격렬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장기 식민지-군부권위주의 통치도 갈등 격화의 주범으로 지적된다. 고려대 조대엽(사회학) 교수는 갈등 격화의 원인을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 사회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고, 서로 생각이 다른 것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찾았다. 조 교수는 “36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와 이후 또 다른 30년간의 군부 권위주의 통치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일사분란’에 익숙해져 갈등 자체가 위험시됐고, 생각의 차이를 참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전북대 강준만(신문방송학) 교수도 최근 완간한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극단적 분열의 원인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70년간 자치를 박탈당한 ‘불행한 역사적 유산’을 중요하게 꼽았다.

전문가들은 시민 개개인의 관용의 문화 회복과 함께 효과적인 갈등관리 시스템 개발을 타개책으로 제시한다. 김 교수는 “시민합의제, 시민배심원제처럼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등이 협치(協治), 공치(公治)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사회 각 집단과 개인이 합의를 통해 공공성을 달성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남석기자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