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국, 이제는 실천이다>고교에 ‘경제학’ 신설… 신용교육 총력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이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는 국가다. 인구 685만명에 한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땅덩어리이지만, 홍콩의 해외금융기관 진출 현황을 살펴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만난 윤승일 한국은행 홍콩사무소장은 “홍콩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의 금융허브”라며 “최근에는 홍콩과 경쟁하고 있는 싱가포르도 홍콩에 밀려 외환시장 등 틈새 시장을 중심으로 특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국가도 홍콩이라는 얘기다.

◈홍콩, 아시아 최고의 금융허브

현재 홍콩에는 전세계 208개의 은행과 예금수납기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지 대표부를 두고 있는 기관도 85개에 달한다. 전세계 금융기관중 홍콩에 진출하지 않은 금융기관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 이어 아시아 최고의 금융허브로 떠오른 홍콩의 위상은 야경(夜景)에서도 잘 드러난다. 홍콩 야경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쌍둥이 건물처럼 나란히 서있는 국제금융센터(International Finance Centre·IFC) 1·2 건물이다.

1988년에 완공된 국제금융센터1은 38층(높이 210m) 규모이며, 2003년에 완공된 국제금융센터2는 88층(412m)으로 전세계에서 5번째 높은 초고층 건물이다. 홍콩 경제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장 확실하게 대변해준다.

국제금융센터2에는 홍콩 최고의 금융감독기구인 홍콩금융관리국(Hong Kong Monetary Authority·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을 합친 기능을 하는 조직)을 비롯,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의 사무실이 가득 차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홍콩의 신용불량 문제

그러나 홍콩 정부도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용카드를 과다하게 사용하다가 신용불량에 빠지는 사례가 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교육인력국의 왕카싱(黃家聲) 교과과정담당 상임국장은 “정확한 통계가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홍콩에서도 대학 신입생들이 신용카드를 너무 많이 사용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일 홍콩의 중심가인 체이터 로드(Chater Road·遮打道)에서 행인들에게 싱가포르계인 DBS(星展)은행이 자사의 ‘블랙 카드’에 가입하면 영원히 연회비를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홍콩달러 400달러 가치가 있는 나이키 상품권이나 초소형 MP3플레이어를 준다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2001~2002년에 널리 행해졌던 신용카드 길거리 모집 광경과 똑같았다.

◈근본적인 해결책-교과과정 전면개편

홍콩도 대학 신입생을 중심으로 신용불량자 문제가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홍콩 정부가 내놓은 방법은 학제와 교과과정 개편을 통한 정공법이다. 이는 문화일보가 올해 연간 캠페인으로 펼쳐온 ‘Creducation 2005-신용한국, 이제는 실천이다’와 기본 철학 및 방향에서 정확히 일치한다.

홍콩은 ‘6년(초등학교)-3년(초등중학교)-2년(고등중학교)-2년(제6과정)-3년(대학교)’인 현재의 복잡한 학제를 오는 2009년부터 ‘6년(초등학교)-3년(중학교)-3년(고등학교)-4년(대학교)’의 미국식으로 간소화할 예정이다.

특히 홍콩 교육인력국은 2009년 학제 개편과 발맞춰 고등학교에서 ‘개인, 사회, 인문교육 핵심 공부 영역’의 6가지 선택 과목중 하나로 ‘경제학’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홍콩 고등학교에서 경제학이 독립적인 교과목으로 분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와 금융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재 2차 수정본(2005년5월 발간)까지 나와있는 경제학 교과서에는 경제학의 기초개념뿐만 아니라 시장과 가격, 거시경제, 화폐금융, 국제무역과 금융 등 경제학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고등학생용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에필로그

현지취재를 통해 둘러본 홍콩 금융교육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든 감독기관이 금융교육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부문을 관장하고 있는 홍콩금융관리국은 말할 것도 없고 증권선물위원회(SFC)와 보험감독국(OCI)의 모든 공무원까지 금융교육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네스트 라우(Ernest Lau·劉偉雄) 증권선물위원회 선임국장은 “전문 배우를 동원해 투자자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연극을 만들고,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게임과 경제교육을 합친 프로그램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류(David Liu·柳維豪) 보험감독국 선임국장은 “텔레비전 광고뿐만 아니라 홍콩 경찰과 함께 보험사기 사건 등을 사례로 엮은 교육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 방영해 금융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조해동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