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문학평론>바다를 건너가는 두가지 방정식

김영하 <검은 꽃>, 황석영 <심청>

이경재

1. 다시 말하기의 절박성

김영하의 ‘검은 꽃’과 황석영의 ‘심청’이 다루고 있는 에네켄 이야기나 심청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창극, 잡극, 악극, 동화, 연극, 오페라,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여러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는 재해석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는 심청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1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멕시코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겪는다는 에네켄 이야기도 이미 드라마나 장편소설, 영화로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다.

이처럼 익숙한 이야기들을 김영하와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다시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라는 역사의 격변기를 다루고 있다. ‘검은 꽃’은 ‘심청’의 서사가 끝나가는 무렵인 1905년 일포드호가 제물포항을 떠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심청이 19세기 중반부터 중국 난징(南京), 진장(晋江), 대만의 지룽(基隆), 싱가포르, 일본의 류큐(流球),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제물포로 돌아온 그 시점에, ‘검은 꽃’의 주인공들은 제물포를 떠나 멕시코로 떠나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 작품은 역사적 격변기를 다룸에 있어 모두 한반도가 아닌 외국으로의 이동이라는 여정을 구성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여로는 외국으로의 이동인 동시에 근대라는 시대로의 돌진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는 인생행로는 근대의 문제와 갈등을 보다 압축적으로 그려 보이게 된다. 그 시각을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여 외부와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여타 소설과는 이질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소설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는 이양선(異樣船)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지 다름만을 확인할 수 있는 타자가 우리 앞에 등장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전도된 상상력일 수도 있다.

사실은 이 시기에 이르러 바다 건너나 북쪽 산 너머에도 야만인들이 아닌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의 차별적 대비를 통해 ‘우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민족이란 나와는 다른 문화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의식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지닌 민족의식의 성장은 조선말 제국주의적 열강과 교류를 시작하던 그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적인 시기가 21세기의 초입에 다시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사이에 놓고 수많은 논란과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 역시, 외부와의 만남과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은 꽃’과 ‘심청’은 상반된 방식을 통해 외부와의 만남과 이상적인 대응방안에 대하여 그 기원에서부터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2. 바다 건너기

두 작품은 이전에 속한 공동체로부터의 이탈로 시작된다. ‘검은 꽃’에서 일포드호에 오른 몰락 양반들, 농민들, 대한제국의 군인들, 도시의 부랑자들은 모두 조선에서 삶의 근거지를 만드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조선이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망의 다양한 편린들이다.

이는 끝까지 생활 자체에만 충실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박정훈에게서 잘 나타나는데, 그에게 국가란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친”(‘검은 꽃’, 문학동네, 2003, 84면. 앞으로의 인용시에는 본문 중의 페이지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곳에 불과하다.

공동체와의 결별이라는 측면에서 ‘심청’은 한결 과격한 양상을 보여준다. 심청은 난징 상인들에게 은자 삼백 냥에 팔린다. 이 일은 만신 무당의 “느이 새어미랑 우리가 널 대국에다 시집보내기루 하였구나.”(‘심청’ 상, 문학동네, 2003, 18면. 앞으로의 인용시에는 본문 중에 상, 하권과 페이지수만 표기하기로 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새어미인 뺑덕어미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인 ‘우리’의 공모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청은 모든 일의 진행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것은 심청의 삶이 공동체로부터 추방된, 희생양으로서의 삶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심청은 이전까지 자신의 삶의 기본 바탕을 형성해 준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것인데, 그녀는 용왕제를 통해 가사(假死) 체험을 하고, 심청이 아닌 렌화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결별이 단순히 이전에 속한 사람들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이전에 속한 사회의 가치나 행동 규범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하는데, 기존 가치나 규범으로부터의 이탈은 두 작품에서, 흔히 법과 질서의 입법자이자 준엄한 집행자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아버지를 무능한 존재이거나 부재하는 존재로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은 꽃’에서 연수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사촌인 이종도는 여러 인물들 중 가장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의 입 하나 해결할 수 없는 이종도는 그의 딸이 거리의 부랑아와 어울리고 인의예지와는 담을 쌓은 마름 권용준에게 몸을 맡기는 상황에서도, 고작 전달되지도 못할 편지를 황제에게 쓰는 황당한 모습을 연출할 뿐이다.

이후에도 이종도는 아침이면 서쪽을 향해 절하며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짜는 방안에 대한 글을 쓰지만, 결국에는 원고의 완성도 보지 못한 채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이 와중에 그의 아내인 파평 윤씨는 마야인 감독과 결혼까지 한다.

그가 가진 자아상과 현실간의 현격한 격차로 인해 이종도는 가장 희극적인 인물인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심청’에서도 심청이 은자 삼백 냥에 팔리는 와중에도, 희미한 공모의 흔적만이 암시될 뿐 아버지인 심봉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청’에서의 아버지 심봉사는 아예 부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이들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외부와의 만남이다. ‘검은 꽃’에서 외부와의 만남은 아시엔다가 펼쳐져 있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채찍을 맞는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감독이 일을 독려하며 휘두르는 채찍을 그들은 굴욕이라기보다는 놀라움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얼굴에 침을 뱉었다면 그 자리에서 마체테를”(106) 휘두를 수도 있었겠지만, “마소에게나 휘두르는 채찍을 사람에게 휘두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106)를 전혀 모르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오던 이주민들은 멕시코의 광막한 아시엔다에서, 이전에 외부를 사유하던 방식의 야만인이 아닌 새로운 타자와 마주보게 된 것이다. 이종도는 멕시코에서도 그가 한때 다녀온 베이징(北京)에서처럼 “최소한 필담은 통하리라 생각했던 것”(114)이지만, 멕시코에서 만난 그들은 ‘필담’이라는 최소한의 언어 규칙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이주민들이 맞닥뜨린 아시엔다는 그 어떤 공동 규칙도 전제할 수 없는, 공동 규칙의 위태로움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장소인 것이다.

‘심청’에서 타자와의 대면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동인도회사의 직원인 제임스의 현지처가 되어 싱가포르에서 생활할 때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을 상징하는 것은 8장의 제목이 ‘매달린 사내와 시계’인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과 시계이지만,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중요성과 비중을 지닌 것은 시계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목걸이 시계, 벽시계, 자명종 시계, 뻐꾸기 시계 등 시계에 대한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온갖 종류의 시계가 등장한다. 모든 것에 자신감이 넘치고 적극적인 심청이마저도 처음 보는 시계 앞에서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나 심청이 아닌 싱가포르인들에게 시계는 모든 생활에 있어 기준점 역할을 한다. 서양인인 제임스는 심청의 눈에 “자명종의 노예”(하권, 29)로 보일 정도이며, 제임스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조차도 “저희는 시계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합니다”(하권, 15)라고 말한다. 시계는 근대인의 삶 전반을 분절하고 규정하는 근대인의 내적인 존재형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근대를 규정짓는 핵심적인 장치인 시계 앞에서, 청이는 “시간……그게 뭐죠?”(하권, 14)라는 당황스러움만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근대 세계의 규칙을 내면화한 백인들 앞에서 심청은 단지 애완용 “개나 고양이”(하권, 30)에 불과한 것이다.

일정한 삶의 규칙과 법도를 공유하던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이들은 아무런 공통 규칙도 전제할 수 없는 낯선 외부와 맞닥뜨린다. 이제 그들은 각자가 놓인 상황에 걸맞은 방식으로 낯선 외부와의 만남을 사유하고 대응해 나간다.

3. 공동체를 위한 ‘굿판’

낯설지만 강력한 외부와의 만남은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오고,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검은 꽃’에서 국가 만들기와 신비주의에의 집착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두 행위의 심층에는 모두 공동체 지향이라는 구심적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검은 꽃’에서 외부와의 만남이 곧바로 공동체 지향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데, 그 이전에 신분제 해체의 여러 모습들이 그려진다. 주지하다시피 신분제가 해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외부와 구분되는 동질적인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서사의 진행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검은 꽃’에서 조선의 신분제도는 제물포를 떠나는 순간, 즉 카니발적 혼란에 싸여 있는 일포드호 선상에서부터 그 잔영조차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왕가의 딸인 연수와 거리의 부랑아인 이정이 혼례를 약속할 정도인 것이다. 이정이 연수에게 하는 “우리 위에 있는 저 양놈들 눈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조선놈일 뿐”(78)이라는 말은 신분제 해체와 그것이 가져온 ‘조선놈’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 곳에서는 단순히 신분제적 질서만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유별과 내외’(122)도 사라진다.

신분제가 해체된 후, “여기야말로 반상의 차별이 전무한 곳이 아니냐”(223)며 국가 만들기의 욕망에 들리는 조장윤이 대표적으로 드러내듯이, 주요 인물들은 곰소 나루 무당의 주술에 걸린 박광수와 같이 국가 만들기라는 주술에 들리게 된다. 출항 이전에 이들을 이끄는 것은 부라든가 출세와 같은 온통 개인적 욕망일 뿐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욕망은 국가 만들기로 집중된다.

‘검은 꽃’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국가 만들기의 욕망이 최종적으로 가닿은 모습은, 이정이 만든 신대한이다. 이정은 “마야인들은 마야인의 나라를 세우고 우리들은 여기, 이 띠깔을 중심으로 하는, 자급과 자족이 가능한, 작지만 강한 나라”(304~305)를 만들고자 한다. 국가 만들기의 최종적인 귀착점인 신대한의 국가 이상이 ‘자급과 자족’에 놓여 있다는 것은 ‘검은 꽃’의 서사가 가닿은 압축적인 공동체 지향성의 선명한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란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스스로를 닫고 마치 자립한 세계인 것처럼 존재하는 시스템으로서, 철저하게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최대 금기 사항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 설정 자체가 된다.(가라타니 고진, ‘탐구’ 2, 권기돈 옮김, 새물결, 1998, 268면) 손가락에 피를 내어 탈출의 금지를 약속하고, 이를 어긴 자를 둘이나 죽인 후에 신대한이 탄생하며, 그러한 혈흔 위에 선 신대한의 최고 금기 사항이 ‘탈영’이라는 것은 공동체가 지닌 성격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공동체를 향한 무한 욕망에 매달려 있는 이들에게 예비되어 있는 운명은 끝없는 이자(異者)와의 대립과 그 결과로서 다가오는 소멸이다. 신대한의 마지막 전사자 박광수의 품에서 나온 대한제국의 관인이 희미하게 번들거리는 “손만 대면 찢어질 것 같은 낡고 바랜 증명서 한 장”(317)은 박광수의 소속을 알려주는 증명서인 동시에, 이 작품의 최종적인 욕망과 그 귀착점을 알려주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무로의 소멸 속에서 솟아나는 것은 오직 박수무당의 저주와 박광수의 예정된 운명밖에 없다.

민족 자체가 뚜렷한 근거를 가진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구성원들 사이의 가상적인 동질감에서 성립하는 일종의 공동체라 할 때, 민족주의적 열정은 종교적 제의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는 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우리 정서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각종 무속이 드러난다.

별신굿, 띠뱃굿, 건장, 병굿, 내림굿과 예언 등이 그것이다. 무속적인 것의 힘은 매우 강렬한 것으로서 박광수는 위도의 무속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 하고, 최선길도 일포드호에서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아버지’의 환영에 결국 자신의 몸을 맡겨 버린다. 이러한 모습은 국가 만들기의 모든 시도가 실패하는 것에 비춰볼 때, 무속적이며 운명적인 것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검은 꽃’에 등장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신비주의는, 타자와의 만남이 공동체에 대한 구심적 집착을 가능하게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나’와 타자, ‘나’와 신과의 합일을 그 핵심 원리로 하는 신비주의의 열기 속에 타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일반자밖에 없는 세계는 타자와의 관계를 배제하고 진리를 강제하는 공동체의 메커니즘과 일치한다.

‘검은 꽃’에 등장하는 수많은 제의 역시 개체를 전체에 일치시키는 공동체의 메커니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러한 한인들의 신비주의는 또 하나의 신비주의와 만나는데, 그것은 가톨릭이라는 세계 종교적 외양만을 쓴 농장주 호세 벨라스케스가 신봉하는 신비주의이다.

농장주인 이그나시오 벨라스케스는 인디오들의 전통적 샤머니즘과 맞서 싸운 자신의 조상 호세 벨라스케스와 마찬가지로 광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오직 다른 이의 믿음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드러난다. 그의 광신과 이주민들이 믿는 무속과의 갈등이 ‘검은 꽃’에서 나타나는 가장 격렬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갈등이 벌어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이그나시오의 신앙이야말로 타자를 배제하고 공동체의 단결을 도모하는 지극히 독단적인 신비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병굿을 벌이다 모질게 맞고 잡혀간 박수무당을 구하기 위해 한인들과 함께 궐기하여 농장주의 집으로 달려간 바오로(박광수)는 성호를 긋고 이그나시오를 향해 “이것은 아니오! 가장 헐벗은 자, 가장 가난한 자, 가장 핍박받는 자와 함께하라는 것이 당신이 믿는 신이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까?”(187)라고 외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곤봉 세례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페낭의 신학교에서 배운 라틴어로 이그나시오와 감독들을 향해 주기도문과 영광송, 성모송, 사도신경을 줄줄 외운다. 그러나 장엄하기까지 한 이 장면은 이그나시오에 의해 “악마의 권능이 그의 입을 빌려 신성한 기도문을 외우는 것”(187)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사제가 라틴말로 하는 미사에 대하여 보이는 이그나시오의 반응은 그의 신앙이 전인류를 상대로 한 보편종교가 아닌 이그나시오(백인)만의 신앙임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게 주기도문이나 영광송, 성모송, 사도신경 등으로 표현되는 종교 자체의 언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본래 주술은 언어적 분절을 넘어선 실재를 지향하기 때문에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문은 바오로가 한국 고유의 무속과의 싸움에서 강력한 힘이 되어 주리라 생각했던 신앙이, 사실은 또 하나의 신비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의 신은 정녕 질투하는 신이었다. 샤먼으로 비롯된 싸움에서 신은 어떤 권능도 보여주지 않았다. 조선과 일본과 멕시코가 각기 저지른 그 모든 죄악을 이들이 대속하고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신은 토라진 아이처럼 질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오로 신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누구도 자신을 바오로라 부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는 이제 신부 바오로가 아닌 박서방, 박광수였다.(188)

자신이 선택한 신앙이 타자와 마주보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아니라 그 외피만을 바꾼, 오히려 훨씬 더 파괴적이고 잔인한 주술적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신부 바오로 아니 박광수는, 아시엔다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내림굿을 받아 백마장군을 받아들인다.

불길한 주술적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말레이시아의 페낭에까지 갔던, 그것도 모자라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에까지 갔던 박광수가 결국에는 백마장군을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은, 대한제국을 떠났던 그 많은 인물들이 결국에는 신대한이라는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박광수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무속에의 욕망과 김이정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국가 만들기라는 공동체 지향의 욕망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로 볼 때, 신대한의 마지막 전사자가 백마장군을 맞이한 박광수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4. 동아시아 위에 지은 연대의 ‘집’

‘검은 꽃’이 갑작스러운 외부와의 만남과 기존 질서의 해체에서 비롯된 과도한 공동체 지향의 욕망으로 인해 뜨겁게 끓어오른다면, ‘심청’은 끊임없이 외부를 품어 안는 모성적 자애로움으로 인해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15세 소녀로 하여금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장대한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가 지닌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심청은 매춘의 상황에서도 항상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심청이 외부의 상황에 흔들림 없는 확고한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여정과 함께 끊임없이 이름이 변화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심청의 모습은 그녀가 주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장소를 옮겨 갈 때마다 이름이 청이에서 렌화로, 렌화에서 로터스로, 로터스에서 렌카로 변하는데, 이는 그녀가 고정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머물게 되는 각각의 장소에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 곳에 걸맞은 주체를 구성하여, 현실의 높은 파고를 헤쳐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 대응 방식은 근본적으로 ‘검은 꽃’의 인물들과 심청이 놓여 있는 존재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심청의 여정은 자신의 제웅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심청은 처음부터 공동체로부터 배제당한 인물로서, 그가 태어난 고향에서 그는 지장전의 위패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추방에서 비롯된 삶이기에 그녀 앞에는 기댈 수 있는 어떠한 공동체도 없다. 심청이 황해를 헤쳐 나가는 삶의 방식은, 알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가해한 타자를 상대하며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1000여 명이 넘는 무리가 함께 이동해야 했던 ‘검은 꽃’의 그것과는 썩 다른 존재양식이다.

심청에게 중요한 것은 ‘검은 꽃’에서 주요 인물들이 지향하는 바와 같은 절대적인 공동체의 공간이 아니라 매순간 구축되는 타자와의 연대의 공간이다. 싱가포르에서 제임스의 정처 자리를 거부하며 “고향” 대신 만들어가고자 하는 “집”(하권, 52)은 바로 모든 순간마다 타자를 받아들이며, 타자와 함께 구성해 나가는 연대의 공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심청은 자신이 거쳐가는 모든 곳에서 약자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힘을 합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어려움들을 타개해 나간다. 그는 난징에서부터 정처의 자식이 아닌 구앙이 “이 집의 바깥세상으로부터 왔다는 걸 처음부터 눈치채고”(상권, 64)는 그와의 관계를 이용해 진장으로 나아간다. 이후 지룽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류큐에서도, 나가사키에서도 심청의 그러한 삶의 방식은 변화되지 않는다.

그녀가 보여주는 타자에의 관심과 연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가 대만의 지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은 처음 동료의 아이를 떠맡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창기들이 낳은 혼혈아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이란 어떠한 공통 규칙도 발견할 수 없는 타자이다. 더군다나 창기의 아이, 더 나아가 창기가 낳은 혼혈아들은 그 타자성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청의 모습은 공동체를 향한 구심적 욕망에 매달리던 ‘검은 꽃’의 인물들과는 퍽 상이한 것이다.

‘심청’에서는 ‘검은 꽃’에서 공동체 결집의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했던 굿마저 타자와의 연대를 향한 원심력의 힘을 발휘한다. ‘검은 꽃’에서의 굿이 한국인 사제에 의해 한국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는데 반해, ‘심청’에서는 류큐에서 그곳의 고유한 사제인 류큐인 유타에 의해 심청과 류큐인들이 동석한 상태에서 행해진다.

그 굿판의 카니발적 열기는 ‘검은 꽃’의 각종 굿판과 별반 다를 바 없으나, 그것은 집단 내의 결속을 다지고 타자를 배제하는 공동체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제의가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진 사람들간의 어울림 혹은 교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굿은 “청이의 낯선 말과 유타 여인의 미야코 사투리가 서로 허공중에서 부딪치는”(하권, 161) 현장으로서, 산자와 망자가, 한국인과 류큐인이, 소외받은 류큐의 원주민과 이제 막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 자가 어울리는 마당이다.

굿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인 류큐 역시 이러한 굿의 성격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류큐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용궁 이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심청전’의 서사 대부분이 변형된 형태로나마 이루어진다. 심청이 류큐에서 주인이 되어 경영하는 술집의 이름은 ‘용궁’이고, 그녀는 그 곳에서 영주의 아내가 되고, 노인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류큐는 심청이 불구덩이 물구덩이를 헤치고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신의 ‘집’을 현실적 지평으로 이끌어 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용궁으로 류큐가 선택된 것일까? 그것은 류큐라는 공간이 당시의 모든 타자가 한데 어울리는 교통 공간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큐 왕국은 오랫동안 일본과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야 했으며, 심청이 도착했던 당시의 류큐는 그 상황이 더욱 복잡해져 서양 상선, 포경선, 군함이 드나들고 영국, 미국, 중국, 사쓰마(薩摩)번 사이에 놓인 나라가 되어 있었다.

하나의 내부와 외부를 가를 수 없는 교통 공간이 바로 류큐의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류큐는 심청이 추구하고자 하는 타자와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사회적 공간으로 가장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류큐 이후 나가사키에서의 ‘심청’은 하나의 부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나가사키에서는 풍운아 하시모토 게이스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심청의 지난 여로에 대한 일본판 반복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 부분에서 긴장감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서사의 빈자리는 당시 일본의 정치상황이나 유곽의 풍속에 대한 지루한 설명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이는 류큐에서 심청의 여정이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을 심청의 여로 안에 집어넣은 것은 동아시아를 전부 시야에 넣으려는 작가의 의욕이 앞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심청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세계에는 더 이상 외부가 없다는 사실이다. 심청은 제임스를 따라갈 것을 결심하며, “이젠 낯선 곳은 하나두 두렵지 않아. 알고 보면 다 사람 사는 세상이었어.”(상권, 305)라고 말한다. 또한 싱가포르에서 돌아와 다시 류큐로 떠날 때도, “내게는 세상 어디나 똑같아 보여요”(하권, 71)라고 샹부인에게 말한다.

이것은 심청이 ‘매춘의 오디세이아’라 불리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온몸으로 겪어 내며 체득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청의 여정이 우리에게 의미를 던지는 것은 모두가 한결같이 균질적인 세계라는 것을 발견해 내었다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폐기해 버림으로써 사람들은 타자와 마주보게 된다.

심청 역시도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완성된 존재로 승화된다. 심청이 마지막으로 황주 복숭아골에 가서 가져온 자신의 위패를 태우는 모습은 어떠한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완성된 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5.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점을 찾아서

‘검은 꽃’과 ‘심청’은 공통적으로 인물들의 여로와 그 여로를 추동하는 욕망이 서로 어긋나는 구조 위에 성립되어 있다. ‘검은 꽃’에서 이정을 비롯한 이주민들은 제물포에서 멕시코를 거쳐 과테말라의 밀림 속에서 소멸되는 직선적 여로를 밟아 나간다. 이에 반해 심청은 황주를 떠나 난징, 대만, 싱가포르, 류큐, 나가사키를 거쳐 다시 제물포로 돌아오는 회귀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물들의 기본적인 욕망은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여로와는 상반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검은 꽃’은 공동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몇 개의 탈주 지점들을 제외하고는 다시 공동체를 향한 구심적 욕망으로 집결되고, ‘심청’에서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원심적 욕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중 인물들의 욕망과 실제 그들의 행로가 보이는 상반됨에서 오는 긴장이 두 소설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이러한 긴장을 바탕으로 두 작품은 외부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 꽃’에서는 외부와의 만남이 공동체를 향한 구심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 때의 공동체가 수많은 평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전의 역사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한민족이 중심이 된 구체적인 실감을 가진 민족국가는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근대의 핵심적인 기획으로서의 민족국가(nation-state)는 끊임없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검은 꽃’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근대적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즉 특정한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외부와 구분되는 내부(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열망인 것이다.

이에 반해 ‘심청’에서는 외부와의 만남이 타자와의 연대라는 원심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결국은 소멸되어 버리고 마는 ‘검은 꽃’의 주요 인물들과는 달리 심청은 대모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된다.

그렇다면, 외부와의 대면에 있어 ‘심청’의 방식은 ‘검은 꽃’의 방식에 대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만약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추방되어 동아시아 전체를 전전하는 운명에 빠진 15세 소녀가 있다면, 과연 심청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이다.

그 대답은 부정적인데, 남해관음의 화신인 심청은 역사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설화적인 인물 쪽에 가까우며, 마지막 모습 역시 새로운 근대적 주체의 탄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초월에 가깝기 때문이다. ‘심청’은 동아시아의 연대라는 시대적 당위를 말하기 위하여 소설적 개연성을 양보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검은 꽃’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패야말로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김영하와 황석영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부정의 방식(‘검은 꽃’)이 되었든 긍정의 방식(‘심청’)이 되었든 공동체를 향한 구심력과 타자를 향한 원심력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의 균형점이었을 것이다. ‘검은 꽃’과 ‘심청’의 험난한 여정은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한 의미 있는 문학적 실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