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국, 이제는 실천이다>“신용불량, 무서운 거네요”

“‘재테크’가 무슨 말입네까?”

“새로 나온 5000원짜리 지폐 좀 보여주시라요.”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조흥은행 본점에는 아주 특별한 고객이 찾아왔다. 통일부의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소속의 탈북자 80여명이 자본주의 경제의 최일선인 은행으로 금융교육을 받으러 온 것이다. 조흥은행은 지난 2004년 10월부터 매월 한차례씩 하나원 소속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해 이번이 17회째이며, 그동안 보안을 이유로 철저히 비공개를 유지해왔다.

◈“신용카드는 뭐하러 만듭네까.”=이날 탈북자 대상 금융교육은 소득과 세금의 개념, 바람직한 소비생활, 은행에서 통장 만드는 방법까지 경제의 기본원리에 대한 강의와 은행이용법에 대한 실습으로 진행됐다. 이날 교육에서 탈북자들이 특히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것은 신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신용불량정보보유자(옛 신용불량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강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던 탈북자들은 “한때 400만명에 달했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분도 신용카드로 물건을 산 뒤 대금을 연체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그럼 신용카드를 안 만들면 되지않느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조흥은행 본점 1층 객장을 둘러보던 탈북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은행안을 가득 메운 고객들과 웃음을 가득 머금은 은행원들.

“북한에서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점원들이 친절할 필요가 없습네다. 그래서 서비스정신도 없습네다.”

◈“설날은 ‘술날’, 아닙네까?”=일부 탈북자들은 설명절을 앞두고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간절한 듯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이라는 임모씨는 “북에서 설날은 일년중 유일하게 맘놓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라 ‘술날’이라 부른다”고 전했다. 그는 “고향에 남아있는 친척과 친구들 생각이 간절하다”며 “그래도 금융교육을 통해 앞으로 남한 땅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돼 뜻깊은 설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을 담당한 조흥은행 관계자는 “탈북자들중에는 한국에만 오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다”며 “이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신용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중점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을 마친 탈북자들은 은행측이 준비한 2006년 가계부를 받아들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본주의 금융교육이 어렵긴 하지만 탈북때 겪었던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네다. 2006년 새해에는 남한땅에서 돈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죠.”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드는 탈북자들의 얼굴에는 새해, ‘제2의 인생’을 맞는 희망과 의지가 가득해보였다.

김상훈기자 s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