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밖에 모르더니 유언도 안남기고…”

고 신상옥 감독과의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납북과 탈출을 통해 동지적인 삶을 살아온 영화배우 최은희(80)씨. 12일 오전 신 감독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지키고 있던 그는 “남편이 급작스럽게 타계하는 바람에 유언도 없이 허망하게 떠나 보냈다”고 애통해했다.

최씨는 “신 감독이 2년전 간 이식이후 최근 재수술을 받아서 경과가 괜찮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고 말았다”며 “할 말이 많으셨을텐데도 통 말이 없으셨고, 주변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만 해서 ‘남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신 감독이 병상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된 뒤에도 신 감독은 “영화 ‘칭기즈칸’을 꼭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전했다.

1986년 탈북한 뒤 미국에서 머물던 시절부터 신 감독은 필생의 작품으로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뜻을 세웠으며, 이후 영구 귀국한 뒤에도 이 영화의 제작을 추진해왔다.

“그 양반은 오로지 영화 생각밖에 없는 분이셨어요. 영화라면 밥도 굶는 양반이셨으니까…. 영화를 만들다가 떠나고 싶다는 말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같아 못내 가슴이 아프네요.”

최씨는 신 감독의 타계후 기념사업 등에 대해서는 “경황이 없어 아직 생각해둔게 없다”며 “영화인으로서 그 양반의 삶에 대한 평가는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의 몫일 것”이라고 했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