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호 시인의 축구 글발>울지마! 토고

그만하면 잘 싸웠다. 넉넉지도 않은 형편의 작은 나라가 쟁쟁한 강호들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것만 해도 성공한 것이라 생각하렴. 우리도 월드컵 첫 출전때는 가난한 나라였다.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느라 기진맥진해 부끄러울 정도의 스코어로 졌던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비행기를 타고 와 호텔에 묵었어도 돈 문제로 훈련을 게을리한 잘못을 저질렀다. 오죽하면 칠순의 감독이 보따리를 쌌을까. 하지만 이해는 간다. 가난은 사람의 정신을 좀먹는다. 가나 축구팀이 받은 보너스가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었겠지.

경기 외적인 부분부터 어수선했던 너희에게 처음부터 이길 수가 없는 경기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경력이 많은 한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슈팅이 골문을 가르던 순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전반전 내내 부두교 주술사가 영검을 부렸던 것일까?

온갖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들답지 않게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뛴 것은 인정한다. 경기 내내 흠뻑 젖은 유니폼이 그걸 증명했다. 다만 박지성을 수비한 수비수는 불운했다. 박지성은 반칙으로 끊기 어려운 타입이다. 무리하면 그런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도 전엔 그랬다. 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해서 경험이 없고 흥분한 탓이었을 테지만.

축구는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월드컵은 오직 승리만을 원한다. 그러나 져도 최선을 다한 패배는 다음의 승리를 부른다. 월드스타라는 아데바요르가 2선에서 부지런히 뛴 것은 단순히 몸싸움을 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것이겠지. 나는 우리가 이긴 다음에도 토고의 맨땅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과 독일까지 오지 못해 자국에서 트럭을 타고 장난감 같은 나팔을 불면서 응원하던 순박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번 경기를 어떻게 보고 생각할까.

울지 마 토고, 너희가 못했다기보다는 한국이 잘한 경기였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뒷심이 달린 것은 차차 나아질 것이다. 스위스와 프랑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 역시 강한 팀이다. 한국이 역전을 한 다음에 공세의 고삐를 늦췄던 것은 포기하지 말고 다음 게임에 임하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솔직히 한국이 큰 스코어 차로 이길 줄 알았다. 그래서 전반전은 악몽이었다. 가출했던 감독은 열정적이었고 너희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만해도 충분히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울지 마 토고. 앞으로 우리는 자주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실력이 자란다면 8강이나 4강전쯤에서 만나겠지. 우리가 언젠가 결승에서 만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니. 싸우면서 정 든다고 도대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토고는 우리 머릿속에 만만치 않게 각인되었다.

너희 역시 아시아의 한국이란 나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경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금세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렴. 다음엔 우리가 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됐으니까 한번 졌다고 포기하지 말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혼내주는 일에 동참하자. 걔들 하는 거 보니 별 거 없더라. 지금은 눈물을 닦고 축구화 끈을 죌 때다. 토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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