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개천절 특집-21세기 개천절의 의미>“글로벌化 진행될수록 한민족 묶는일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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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연구의 제1인자로 꼽히는 이광규(74) 재외동포재단이사장이 개천절을 ‘세계 한민족의 날’로 확대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이사장은 2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천절은 우리 한민족의 생일인데 전세계에 700만 동포가 흩어져 살고 있는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엔 개천절의 의미가 더욱 긴요해진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이사장의 이같은 제안은 정부안팎에서 동포의 날 제정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구체화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천절에 대한 새로운 조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개천절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개천절이란 우리 민족의 시작이자 국가를 개국한 날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위해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전세계에 동포가 흩어져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엔 더구나 개천절의 의미가 긴요해집니다. 요즘 정부 안팎에서 동포의 날 제정 움직임이 있습니다. 내 생각엔 개천절이 우리민족이 시작된 날이니 세계 각곳에 사는 동포들을 위해 세계한민족의 날로 확장해봄직합니다.”

―개천절을 세계한민족의 날로 제정하자는 제안인가요.

“개천절에 태극기 내걸고 경축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적 민속놀이를 하나 정해서 전세계적으로 경축하자는 거지요. 우리 민속놀이 중에서 그네뛰기나 널뛰기는 세계 다른 민족이 별로 하지 않는데, 우리가 그것을 동포의 놀이로 정해서 서양식 추수감사절처럼 기념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농경민족이었으니까 농사를 다 짓고 조상에 감사한다는 의미도 겸해서 이날을 기리면 어떨까 합니다. 전세계 동포들이 함께 글로벌하게 놀자는 제안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지요.이미 중앙아시아 동포들은 10월3일을 고려인의 날이라고 해서 퍼레이드도 하고 크게 잔치를 합니다. 추석이나 설날이 중요한 명절이지만 중국 사람들도 우리처럼 추석을 명절로 여기고 설날도 서양에서는 중국식 새해 첫날(Chinese new year day)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10월3일을 세계 한민족의 날로 정해서 함께 글로벌하게 축제를 했으면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월4일 그리스 방문중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교민들이 재외동포의 날 제정을 주문하자 “동포의 날을 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알아보겠다”면서 “개천절(10.3)과 한글날(10.9)이 민족적 개성이 두드러진 기간이니 이때를 동포주간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있는데 정부에서 검토해 곧 결론을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단군에 대해선 북한이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단군은 어디까지나 신화이고 모든 민족은 창조 신화와 건국 신화를 갖고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해해야지 북한에서처럼 그것을 너무 과도하게 인성화시키면 곤란합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일한 지난 3년을 평가한다면.

“서울대에 재직중이던 1980, 90년대엔 힘들고 어렵게 사는 해외동포들을 주로 만나러 다녔습니다. 일본을 갔을 때도, 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연합지역 국가들을 방문했을 때도 주로 가난한 동포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문화를 지켜봤습니다. 해외동포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겪는 고통은 무엇인지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외동포재단이사장이 된 후로는 해외동포 가운데 지도급인사들, 엘리트나 성공한 이들을 주로 만나러 다녔습니다. 지난 3년간의 활동을 통해 재외동포들의 전체상을 볼 수 있게 된 셈이죠.”

―평생 재외동포문제를 연구해왔는데 재외동포들의 한계와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평생 동포연구를 했지만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이민연구에 동결현상(frozen phenomenon)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살던 곳을 떠날 때의 인식을 고정적으로 갖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중국이나 연해주로 건너간 사람들은 1900년대, 일본으로 간 사람들은 1930년대,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은 1960년대 또는 1980년대에 관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살던 곳을 떠나던 시점에 갖고 있는 생각이나 인식은 좀처럼 깨지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우리 한국사회는 굉장히 변화했는데 재외동포들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밖의 동포들은 한국에 대해 대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류가 동남아를 휩쓸고 미국으로 간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장금 등의 드라마를 보지 않다가 외국 친구들이 권할 때 그제서야 보는 교포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만든 게 오죽하겠느냐는 선입견을 갖고 대합니다. 외국사람들이 모두들 LG TV 가 세계최고라고 하는데도 막상 교포들은 ‘글쎄 그게 소니보다 나을까’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런 게 나는 참 서운합니다.”

―동포들의 그런 선입관을 시정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요.

“동결현상은 우리민족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민족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민법칙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변화가 완만했다면 동포사회에도 충격이 크지 않을 텐데 우리가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에 재외동포들이 이런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우리의 변화를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도 재외동포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양측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방안을 찾아내는 게 재외동포재단에서 내 과제인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가중심으로 모든 게 이뤄졌던 시대에서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내외 동포의 네트워킹 문제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어 이런 각도에서 문제를 접근해보는 것도 유용할 듯합니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생존경쟁의 단위였는데 이젠 민족이 생존경쟁의 단위가 된 만큼 재외동포의 중요성은 훨씬 높아지는 셈입니다.”

―민족이 글로벌 시대 생존경쟁의 단위로 부상했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네요.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중국의 경우 인구가 13억이나 되는데 그런 중국사람들도 중국인들끼리 단합하자며 대중화주의를 내세웁니다. 덩샤오핑과 리콴유가 손잡고 세계 화상대회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생각은 13억의 인구와 화교 6000만이 가지는 자본, 북미지역에 살고 있는 300만의 중국계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뇌를 합치면 유대인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인이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될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대중화사상입니다.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계 모든 민족들이 그렇습니다. 민족이 살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독일민족, 폴란드민족, 아일랜드민족, 그리스민족, 터키민족 등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어디에 살든지 국경을 문제삼지 않고 민족 대단합을 해야 한다는 사조가 요즘 뚜렷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일시적 유행으로 그칠 것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만큼 우리가 동포를 보는 눈, 동포가 우리를 보는 눈을 하루빨리 바꿔야 하는 거지요.”

―글로벌시대 민족의 상생을 위한 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해야할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요.

“재외동포들이 우리 경제건설에 쏟은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게 우선돼야겠지요. 작년 6월 청와대에서 재외 한인회장 초청 다과회가 개최됐을 때 노 대통령 앞에서 재외동포들이 경제건설에 쏟은 노력을 평가해야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 60년대말 새마을운동할 때 재일교포들이 돈을 엄청 갔다줬습니다. 그때 제일 대표적인 게 제주 감귤입니다. 감귤이 제주의 온화한 날씨 덕분에 키워진 게 아니라 재일동포들이 묘목을 갖다 키워서 생긴 겁니다. 재일동포 없었으면 제주감귤도 없었을 것입니다. 70년대 중화학 공업화할 때 재미교포들이 두뇌를 갖다줬고, 90년대 일산과 분당신도시 건설때 15만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건설현장의 일꾼으로 참여했습니다. 근대화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노동 모두를 재외 동포들이 가져다준 셈이지요. 우리가 동포들의 이런 노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롭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우리와 동포간에 놓인 불신을 씻고 세계 한민족의 힘을 새롭게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약력

▲1932년 인천생▲서울대 사범대 역사학 졸업(1960 )▲오스트리아 빈대 민족학과 졸업(1966)▲서울대 사대 교수(1968~75)▲서울대 사회과학대 인류학과 교수(1975~97)▲서울대 명예교수(1997~)▲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1998~)▲세계한민족포럼 상임공동대표 (1998~2001)▲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2000~2003)▲재외동포재단 이사장 (2003~)▲‘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사회’ ‘해외동포’ 등 재외동포관련 저작 2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