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반짝회복 반복…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

‘부실과 관치로 얼룩진 금융, 선단식 경영으로 빚더미에 둘러싸인 재벌, 방만과 비효율의 극치였던 공공, 극한 대립과 갈등에 둘러싸인 노사….’

1997년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경제는 응급실에 드러누운 ‘중환자’였다. 30년이 넘는 고도압축성장과정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내부로부터 싹튼 부실의 기운은 정책실패와 외부로부터 불어닥친 ‘광풍’으로 결국 의사의 처방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10년, 한국경제는 장기적인 성장곡선의 궤도에서 벗어나 2~3년 주기로 침체와 회복을 반복하고 있다. 대대적인 수술(개혁)과 각종 부양책을 통해 겉으로는 위기의 질곡에서 벗어난 듯하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 과도했던 기업의 빚은 나라와 가계의 빚으로 전이됐고, ‘벤처·코스닥→신용카드→부동산’ 등 형태를 달리해 재연되고 있는 ‘버블(거품)’은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이 아직도 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서막(~1997년)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흥청망청하던 1996년. 위기의 징후는 국제수지에서부터 나타났다. 반도체가격 급락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되면서 무역수지적자 규모만 당시로서는 최대인 206억달러에 달했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를 냈다. 삼미·진로·대농·기아 그리고 해태까지 30대 대기업 중 6개 기업이 차례로 무너졌다. 1994~1996년 호황기,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대기업의 무리한 투자 등 양적 위주의 경영전략이 한계점에 직면한 결과였다(1997년 제조업 부채비율만 396%). 대기업의 연쇄도산은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신용경색,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됐다. 동남아시아발(發) 외환위기로 해외투자자들은 아시아시장 전반에 걸쳐 투자자금 회수에 열을 올렸다. 10월28일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붕괴됐고 11월10일 원·달러 환율은 1000원을 돌파했다.

달러화 공급은 끊기고 환율방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마저 소진되면서 외환보유액은 거의 바닥이 났다. “펀더멘털은 문제 없다”며 큰소리 치던 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고난의 시기 (1998년) = 정부와 IMF는 경제의 혈맥, 금융부문(부실금융기관)부터 수술대 위에 올렸다. 국민의 혈세(공적자금)를 신속하게 투입한 뒤 메스(구조조정)를 가했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채권을 발행, 돈을 끌어모아 부실금융기관의 출자와 부실채권매입, 예금대지급과 출연을 위해 투입했다. 이 기간부터 4년반 동안 620개 금융기관들이 퇴출됐다. 고금리와 긴축정책으로 내수경기는 더욱 위축됐다. 가장 큰 고통은 실업이었다. 정리해고와 반강제적인 희망퇴직으로 실직자들이 늘어났고 지하철역엔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2월 들어 ‘100만 실업자’시대가 열렸으며 실업률은 7~8%대까지 치솟았다.

◆반짝 회복(1999~2000년) = 1998년 5월 저금리정책과 경기부양책으로 거시정책이 전환됐다. 한때 30%를 넘나들던 회사채유통수익률은 10월 이후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6월16일 208로 바닥을 쳤던 주가는 12월15일 580으로 6개월 만에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그해 3분기(-8.1%)를 저점으로 경기는 회복의 기운이 감돌았다. 지렛대는 수출이었다. 1999년 5월 증가세로 반전된 후 10월부터 20%를 웃돌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급속한 신장으로 벤처열풍이 확산됐고 코스닥시장이 급부상했다. 1998년 5월 304개사이던 벤처기업은 2002년말 8798개로 2년반 만에 30배 가까이 늘었고 코스닥지수는 1998년 10월7일 60.7에서 15개월 후인 2000년 3월10일 283으로 3배 이상 치솟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아픔으로 무너지던 금융기관들이 재기하고 일부는 합병이나 매각을 통해 빛을 보았다.

◆침체와 회복을 반복하며(2001년~) =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경기상승세는 2000년 4분기를 기점으로 하강세로 전환됐다. 벤처와 코스닥의 거품도 급격히 꺼졌다. 침체의 골은 깊었다. 정부는 소비진작을 위해 신용카드사용을 적극 유도하고 건설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 덕에 2002년 경제성장률이 7%까지 상승했다. 빚을 통한 성장, 버블의 후유증은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플라스틱 버블’의 붕괴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 이라크전쟁 이후 고유가시대의 도래로 2003년 이후 한국경제는 극도의 내수침체에 빠졌다. 2005년까지 3년간 3~4%대의 저성장에 허덕였다. 3년간의 고전끝에 2006년에는 4년 만에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5% 내외의 성장률을 달성하게 됐다. 역시 가장 큰힘은 수출이었다. 수출은 2000억달러를 달성한 지 2년 만에 3000억달러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정부의 부양책과 함께 고개를 들던 부동산가격은 2003년 참여정부 집권 이후 정책실패와 맞물리면서 또다른 버블의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송길호기자 khs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