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윤의 스포츠인생>“국내 지도자중 최고 승률 ‘勝延 이름 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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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농구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2m가 넘는 장신을 2명이나 보유한 중국을 꺾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귀중한 은메달을 따냈다. 당시 여자 농구는 지금의 축구 A매치만큼이나 인기가 높았고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했던 한국은 84년 뉴델리아시안게임 이후 2년간 중국에 처참할 정도로 깨져왔기 때문에 LA올림픽 한·중전은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한국은 2년 만에 중국을 13점차로 대파했다. 이때 감독이었던 조승연(사진)은 경기 후 코트에서 펑펑 울었고 그 장면은 TV화면으로 그대로 중계됐다. 펑펑 운 것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던 조승연씨를 지난 5일 문화일보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의 단장을 맡고 있는 조승연(63)씨를 이야기하자면 그의 선고장(先考丈) 조득준 선생을 먼저 알아야 한다.

평양 태생인 조 선생은 일제시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에서 농구선수를 하며 전일본선수권대회를 3연패했고 일본 릿쿄(立敎)대학에 유학해서도 팀을 전일본선수권 3연속 우승으로 이끈 불세출의 농구선수였다. 가드부터 센터까지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던 올라운드플레이어였던 조 선생은 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고 은퇴 후 대한체육회 이사 겸 국내 여러 팀을 지도하다 58년 2월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44세에 요절했다.

전설적인 농수선수 아버지를 두었지만 조승연은 농구보단 공부를 택했다. “아버지는 일본 유학시절 동경의전에 다니시던 어머니(정신영·99년 작고)를 만나 연애 결혼하셨어요. 어머니가 마포 공덕동에서 ‘상신의원’을 개원하신 덕에 집에는 봉투만 보여 주고 월급은 제자들 불고기 사주느라 다 쓰셨다고 합니다.

사실상 처가살이를 하셨는데 외할머니가 가끔 불평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아현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농구를 할래, 공부를 할래’ 물었는데 공부를 하겠다고 했어요. 난 기억이 없지만 ‘농구를 하면 돈 못 벌잖아요’라는 이유를 댔었다고 어머니가 나중에 그러시데요. 어렸을 때지만 외할머니의 불평이 뇌리에 박혀 있었나 봅니다.”

조승연은 서울중학 1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서울에 차 몇 대 없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니…. 광화문에서 체육회 이사회가 있어 늦으셨대요. 당시에는 통금이 있어 군용 지프들이 불법영업을 했다는데 그걸 타고 귀가하다 서대문 로터리에서 군용지프끼리 사고가 났어요. 적십자병원에서 운명하셨지요.”

아버지에게 반발해 공부를 택했지만 결국 그 아버지 때문에 조승연은 스스로 농구선수가 된다. “서울고에 진학했는데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 제자들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신문과 방송에서 거의 1주일간 이를 보도하고 조사가 실리는 등 대서특필해 그때서야 아버지가 대단했던 분이란 걸 알았고 제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서울고는 농구팀은 없었지만 특별활동시간에 농구를 선택한 조승연은 재수 끝에 64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농구를 하고 싶어 아버지의 모교인 고대를 택했죠. 당시 주기선 감독이 아버지 제자라 선수가 되겠다는 내 부탁을 들어주셨지요.”

178㎝에 불과한 키에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주전선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2학년 때인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그는 후반 스타팅 멤버로 기용된다. “전반 3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내가 스타팅으로 기용되자 나는 물론 본부석의 고대 농구부 선배들, 응원단까지 경악했어요.

키도 작지 그동안 얼굴도 못 봤던 선수를 내보냈으니 다들 주 감독이 경기를 포기한 줄 생각했다는군요.” 당시 연세대는 국가대표 신동파와 김인건 등이 베스트멤버여서 고대는 연패를 당하고 있던 형편이었다. 그러나 조승연이 들어간 후반에 신동파는 공을 잡아보지 못했고 고려대의 3점차 역전승으로 끝났다.

나중 주 감독은 조승연의 깜짝 기용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연세대의 패턴은 김인건의 패싱에 이은 신동파의 슈팅이었다. 따라서 김인건을 봉쇄하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었다. 우리 팀에서는 조승연이 가장 잘 뛴다. 그래서 그에게 김인건을 무조건 막으라고 특명을 내렸다.”

전력상 열세였던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이끈 조승연의 이름은 드디어 알려지게 됐는데 고대신문의 기사 때문에 그의 이름에 대한 잘못된 내력이 전국에 퍼졌다. 조승연의 같은 과 동기이기도 한 고대신문 학생기자가 조승연이라는 이름의 내력을 ‘고대출신 아버지가 연세대를 꼭 이기라고‘勝延’이라고 지었다’고 작문성 박스기사를 낸 것. 일간지들도 고대신문의 기사를 받아 대문짝만하게 싣는 바람에 그는 ‘연세대를 꺾기 위해 태어난 선수’로 알려지게 됐다.

“원래 항렬이 이을 ‘承’인데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이름을 짓겠다고 하고는 일주일 만에 이길 ‘勝’을 넣은 이름을 내봤대요. 연세대를 이기라고 지은 것은 아니고 인생에서 항상 승리를 거두라는 의미였을 거예요. 그러나 요즘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덕을 많이 본 것 같습디다.”

대학이후 국가대표 시절, 그리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조승연에게는 항상 승운이 따랐다. “대학 4년 때인 67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는데 그 해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국이 덜컥 은메달을 땄어요. 당시 유니버시아드대회는 사실상 국가대표급이 출전할 때인데 우연인지 우승후보 소련이 불참한 덕에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죠.

또 69년 아시아농구선수권(ABC)에서도 한국이 우승했어요. 남자농구의 아시아 제패는 그때가 처음이었죠. 물론 나는 주전급은 아니었고 교체멤버로나 들락거렸지만요. 그런데 내가 대표팀에서 빠진 70년부터는 성적이 나지 않았어요.”

조승연은 나중 삼성생명 여자팀 코치, 감독을 할 때도 항상 우승을 도맡았는데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지도자중 최고승률일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공교롭게 프로농구 삼성팀 단장을 맡고서도 이듬해 정상에 올라 ‘승리를 길게 몰고 다니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효험이 뛰어난 ‘부적’역할을 했다.

조승연이 이순을 넘긴 나이까지 농구 현장에 몸담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꼭 아버지의 음덕 때문일까? “좋은 스승(주기선, 김영기)을 만났고, 인복(人福)이 많아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덕장(德將)이라는 평을 받는다. 성격이 부드러워서 후배나 제자들이 잘 따랐고 의외로 리더십이 있었다.

주기선 감독은 대학 3년 때 4학년이 맡던 주장을 그에게 맡겼다. 기업은행 시절 김영기 감독도 은퇴 후 지점 근무를 2년쯤 마쳤을 때 코치로 기용하던 관례를 깨고 은퇴 다음날 곧바로 코치 발령을 냈을 정도로 그의 지도자로서의 품성을 인정했다.

LA올림픽 당시 주장이었던 박찬숙은 얼마 전 ‘스포츠 인생’ 인터뷰에서 조 감독을 이렇게 평했다. “선수를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만든다. 그래서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지도자다.”

LA올림픽은 그에겐 가장 영광스러운 무대였지만 준비 기간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프레올림픽 4위까지 본선 티켓을 줬는데 우린 5위에 그쳤죠. 그런데 소련의 불참으로 대타로 출전할 수 있었는데 대한체육회에서 메달 가능성이 없는 종목으로 분류, 올림픽 출전이 1차 보류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농구협회에서 사복으로 무교동 체육회관으로 전원 집합하라는 전화가 왔어요. 가보니 청와대 버스가 와 있더군요. ‘88올림픽유치국인데 출전권을 딴 종목은 모두 보내라’고 지시한 전두환 대통령이 여자농구팀을 초청한 것이에요.

대통령 가족들만 식사한다는 별실에서 오찬을 하는데 전 대통령이 ‘나는 군인이라 전쟁에서 지면 다음 기회는 없지만 너희는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가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공’ 한번 안 될까’하시데요. 엉겹결에 ‘꼭 이기겠습니다’ 대답했는데 그날부터 개막까지 한 달간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그 한 달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완전히 정신이 몰입되어 훈련했어요. 아마 그런 훈련은 우리 멤버 누구의 농구인생에서 다시 없었을 겁니다. 중국에 이기는 순간 갑자기 아버님이 떠올랐어요. ‘아버님 나도 해 냈습니다’ 뭐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치며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죠.”

조승연 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 농구선수가 되기를 거부했던 죄송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이동윤 체육부장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