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회계사 33년 정점에서 ‘통신 CEO’로 대변신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사회적 책임은 항상 평행선만 달려야 하는 것일까.

최근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힘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수익 극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애당초 ‘윤리적 기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지난 2월 영국 통신업체 BT그룹(구 브리티시텔레콤) 신임 회장으로 지명된 마이클 레이크(59) KPMG 회장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레이크 회장이 내세운 기업의 새로운 화두가 바로 ‘사회적 책임’, 곧 ‘윤리적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회계법인계의 유일한 비(非)미국인 회장 출신 = BT그룹은 지난달 19일 크리스토퍼 블랜드 현 회장의 후임으로 레이크 회장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레이크 회장은 33년간의 회계사 시대를 접고, 오는 9월부터 6년간 대형 통신업체의 경영자로 변신하게 됐다.

레이크 회장은 현재 세계 최대의 다국적 회계법인인 KPMG 회장. 영국 웰링턴칼리지를 졸업한 뒤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레이크 회장은 1972년 KPMG에 첫발을 내디딘 후 영국은 물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등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17년간 실력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KPMG 회장으로 선임됐고, 미국이 휩쓸고 있는 전세계 메이저 회계법인 중 유일하게 비 미국인 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선임 배경에는 2002년 유럽 컨설팅 부문 아토스 오리진 매각을 주도하고 지난해 영국과 독일 부문을 합병하면서 보여준 실력 때문이라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분석했다. 특히 KPMG가 2005년 조세회피 상품을 판매했다가 미국에서 기소될 처지에 처했지만, 4억여달러(약 3800억원)의 벌금을 내는 선에서 그친 것도 그의 수완 때문이라는 것.

이같은 노력 덕분에 KPMG는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선정한 ‘2006년 일하기 가장 좋은 기업’에 선정됐으며, 레이크는 올해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KPMG의 전 동료인 디그비 존스는 최근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마이크와 BT, 주주 등 3자 모두에게 새로운 마력이 될 것이며, 그는 다양한 산업부문과 영국 사회 전반에 더 넓은 경험의 폭을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하는 ‘윤리적 리더십’ = 이미 전세계에 KPMG 직원 11만명을 거느리고 있는 정상의 그는 왜 BT 회장직을 수락했을까. 그것도 지난해 KPMG에서 받은 360만파운드(약 65억원)보다 훨씬 적은 연봉 60만파운드에 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KPMG에 머물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서 “그러나 이제 KPMG는 최고의 상태로,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변화를 위한 적당한 시간이 된데다 BT는 향후 상당한 수익성이 있어 보여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레이크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사회적 책임’. 그는 2003년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대형 회계부정사건으로 실추된 신뢰를 되살리기 위해 전세계 6대 주요 회계법인들이 모인 회의를 주도하면서 업계의 자정과 개혁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영국 왕립 시각장애자연구소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KPMG 재단의 사회적 책임 사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그 스스로도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기업의 시민권’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통해 “고객들과 직원들은 사회적 책임이 강한 기업에서 물건을 사고, 일하고 싶어한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사업 사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해초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연막술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전략과 기업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면서 “다만 기업도 단기적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하며,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BT는 앞으로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익명의 KPMG 관계자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의 회장이 취임하면 BT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매우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윤리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경영자도 정보통신업계가 처음이라는 약점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서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