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경영 능력 갖춘 공학도 출신 “투자우선 전략” 시험대 올라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경영 실력까지 갖춘 공학도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찾기가 쉽지 않다.물론 2000년 이후 ‘닷컴’ 열풍으로 인터넷업계를 중심으로 젊은 공학도가 경영자로 성공한 사례가 늘었지만,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는 여전히 철옹성이다. 이들 산업부문에서는 전문기술을 갖춘 공학도가 경영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경영자를 꿈꾸는 공학도라면 올 1월1일 유럽 최대 자동차제조업체 폴크스바겐 그룹의 CEO로 취임한 마르틴 빈터코른(60·사진) 회장의 행보를 지켜보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로 빈터코른 회장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공학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에 경영능력까지 갖춘 박사 CEO = 독일 레온베르크 출신의 빈터코른 회장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금속학과 금속물리학을 전공했다. 1973년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에는 막스 플랑크 화학연구소에서 1977년 금속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경영자들의 필수코스인 경영학석사학위(MBA)와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순수한 공학도 출신인 셈이다.

이 때문에 사회 진출도 늦을 수밖에 없었다. 첫 직장인 세계 최대의 기계부품업체 보쉬에서 공정공학 조사분야의 보조 연구원으로 일한 것이 30세. 폴크스바겐 그룹의 계열사인 아우디에 입성한 것은 1981년으로, 당시 나이가 34세였다.

그러나 빈터코른 회장은 이후 중앙제어장치 인증, 아우디품질보증 부문 책임자를 거쳐 1996년 폴크스바겐그룹 기술개발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2002년 3월 아우디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보여준 실적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폴크스바겐 그룹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급브랜드인 아우디는 빈터코른 회장 덕분에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판매 신기록을 세운 것. 아우디는 지난해 매출액 311억유로(약 39조원), 영업이익 20억1500만유로를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17.1%, 43.2% 늘었으며, 이는 지난해 폴크스바겐그룹이 기록한 전체 매출액 1049억유로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빈터코른 회장은 지난 9일 실적발표 기자회견에서 “폴크스바겐의 2008년 세전순익은 2004년 11억유로에 비해 훨씬 늘어난 51억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9일 “올 1~2월 폴크스바겐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3% 오르는 등 빈터코른 회장 취임 이후 다소 좋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조조정보다는 질적 투자로 성장 이끈다 = 그러나 이 실적으로는 미국·유럽시장에서 고전하면서 2005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낸 폴크스바겐을 되살리기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베른트 피셰츠리더 전 CEO가 지난해 직원 2만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뒤 노조와 인력감축 및 근무시간 연장을 놓고 협상을 벌여오다가 결국 사임한 것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빈터코른 회장은 3월초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품질이 가장 첫번째 우선순위”라면서 “구조조정도 이어가겠지만 그보다는 단단하며, 양질의 고가치 차량을 시장에 내놓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2일 보도했다. 폴크스바겐은 골퍼를 위한 승용차 ‘골프’와 스포츠카 ‘시로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 ‘티구안’ 등도 모두 내년에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며, 이 회사의 첫 하이브리드카도 내놓는다. 또 2009년 가동을 목표로 인도 푸네에 공장을 건립하는 등 신흥시장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유럽시장에서 명예회복을 위해 스페인 등에 대한 투자도 늘릴 것으로 보인다.

금속학 박사답게 날카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 빈터코른 회장에 대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 7일 독일 시사잡지 슈피겔이 인터뷰에서 빈터코른 회장에게 포르셰 가문 출신 페르디난도 피에흐 이사회 의장의 ‘대리인’ ‘가신’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질문했을 정도로, 피에흐 의장과 대주주 포르셰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 또 영국의 한 투자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삭감보다 양적·질적 투자 중심의 전략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어 그의 실제 능력에 대한 검증은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