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델’ 구하러 돌아온 ‘PC 제왕’

세계 2위 컴퓨터 제조업체 델이 최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단돈 335달러(약 31만원)짜리 신제품을 내놓았다.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비밀리에 추진해온 코드명 ‘황푸(黃浦)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셈.

이는 또한 올해 1월에 3년만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창업자 마이클 델(42)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던지는 첫 승부수이자, 비밀 병기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위크(BW)는 “올해초 마이클 롤린스 CEO를 경질하고 3년만에 복귀한 델 회장이 또다시 델에 새로운 혁신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저가로 중국의 거대 소비층 사로잡는다 = 이날 델이 내놓은 제품은 ‘EC280’. 가격은 모니터 없는 기본형이 340달러, 17인치 LCD 모니터까지 갖춘 최고급 사양도 520달러에 불과하다.

또 무게가 가볍고, 높은 에너지효율성을 갖추고 있어 저가 컴퓨터에 대한 편견도 산산이 깨뜨릴 만한 수준이라는 게 AP통신 등 외신들의 분석이다.

크기도 애플의 ‘맥 미니’에 비하면 8분의 1 정도이고, 전력소비량도 일반 컴퓨터와 비교할 때 겨우 4분의 1 수준인 65W에 불과하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대럴 워드는 이날 “우리는 단순히 저가 컴퓨터를 만든 게 아니다”면서 “급속 성장으로 베이징(北京) 등에서 전력난이 날 정도의 상황을 고려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EC280 출시는 델 회장의 중국 공략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21%의 컴퓨터 판매 신장률을 보이고 있는 세계 2위 규모의 컴퓨터 시장인 중국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미국 시장이 지난해에 전년보다 2.6%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중국 시장은 향후 컴퓨터업계의 ‘노다지’ 땅이다.

현재 중국 시장은 중국기업 레노보가 36%의 시장점유율로 수위를 달리고 있고, 델은 휴렛팩커드(HP)와 함께 각각 9%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델 회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설계된 첫 제품”이라면서 “소프트웨어·서비스 부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중국에 대규모 투자와 함께 인수·합병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델 2.0’ 주도하는 혁신 리더십 =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델 회장은 이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스티븐 잡스 애플 회장 등과 함께 정보통신(IT)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1984년 텍사스대 의대 1학년때 단돈 1000달러로 ‘PC 리미티트’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4년만에 8000만달러 시가총액의 기업을 일궜기 때문이다. 이후 델 회장은 158억달러의 재산규모로, 2007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7번째 부자로 이름을 올렸고, 세계에서 30위로 재산이 많은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델 회장의 최대 장점은 호기심과 끊임없는 혁신 마인드. 15세때 애플II 컴퓨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한 일화나, 대학시절 기숙사 방에서 낮밤으로 몰려드는 고객들에게 제품 판매는 물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특히 델이 중간 판매상 없이 전화주문을 통해 직접 컴퓨터를 판매한 방식은 기존 컴퓨터 유통시장에 대대적인 혁명을 불러일으켰었다.

소비자 주문에 따른 제품 조립 및 배달과 고객의 주문성향 분석 시스템, 질문에 대한 자동응답 시스템 ‘프리미어 페이지’ 등이 모두 델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델 회장이 갖춘 이 혁신에 대한 열정은 3년만에 복귀했는데도 하나도 시들지 않았다. 델 회장이 재취임한 뒤 지난해 HP에 빼앗긴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 바로 전반적인 혁신을 강조한 ‘델 2.0’으로, 이는 최근 델 회장의 모든 혁신 활동을 포괄하는 용어다.

결국 델의 운명은 그가 또다시 성공신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것에 앞서 먼저 내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29일 내부감사 결과 부정과 회계상의 오류가 발견되면서 기한내에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례 재무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

일단 회계 위기를 극복하고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다스리는 문제가 시급한 마당이어서 델 회장의 두번째 성공신화는 벌써부터 발목이 잡힌 것 같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