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시행 첫날… 현장 곳곳서 혼란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라.”

비정규직법 3법이 시행된 사실상 첫날인 2일,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파업에 돌입하는 등 노동 현장은 극심한 혼란을 나타냈다. 577만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법’이 오히려 고용불안 등을 초래, 분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대량 계약해지와 용역업체직원 투입 = 이랜드 그룹 소속 비정규직 약 600명은 2일, “계약직 노동자 300명이 해고됐다”며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에 대해 사흘째 점거 농성을 벌였다.

이같은 사태는 이랜드 그룹이 7월1일 시행된 ‘기간제 근로자법’에 따라 비정규직 2738명중 절반정도만 정규직화하고 계산원을 대거 계약해지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또 ‘파견근로자법’에 따라 계산원을 용역업체로 돌리고 용역업체 직원들을 계산대에 투입, 현장에서 노조측과 마찰을 빚었다.

이남신 이랜드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계약직 근무 2년이상 되면 정규직화해야 하고 차별을 시정하라는 비정규직보호법안 때문에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지금 홈에버에만 계약직이 약 3000명으로 이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떨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롯데호텔에서도 식기세척 담당부서인 ‘팬트리’ 비정규직 근로자 43명을 용역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근로자들은 ‘비정규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 중구 롯데호텔 앞에서 비정규직 계약해지 반대집회를 벌이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비정규직 근로계약이 기존 5년에서 2년으로 축소할 상황에 놓이자 약 730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협측은 소수만 별정직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유통부문의 경우 외주용역화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공공기관·학교도 계약 해지 = 구청 등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송파구청은 지난 6월초 11년간 계약서 없이 재무과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으며, 민원안내도우미 업무와 전화민원 안내 업무에 종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서울 S여고에서는 행정실에서 12년 9개월간 수납업무를 담당해 온 정모(여·34)씨가 해고 통보를 받자 지난 5월말 자살을 기도했다. 정씨는 S학원 재단측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계약해지당하고 자신의 자리에 외주 용역 인력이 대체된다는 사실을 알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자살을 기도,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차별금지조항 피하기 위한 편법 등장 = 비정규직법상 ‘차별조항’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별도로 직군화해서 비교대상 직군을 아예 없애는 편법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창구직원 3000명을 별도 직군제로 분류해 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고용은 보장해주되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기존 상태로 묶어뒀다고 해서 비정규직도 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축소법이 아닌 확산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이 불가피하다면 기업별 고용안정보다는 직업별, 산업별 고용안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권·민병기기자 gja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