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선…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제1칙, ‘덕산탁발(德山托鉢)-바리때를 들고’중에서)”

문외한은 아무리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는, ‘무엇이 너의 본래 면목이냐’의 시작 부분이다. 이 책은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취임한 1967년 이후에 하안거와 동안거의 결제일과 해제일 등에 법당에 올라 설법했던 상당(上堂) 법문집. 1982년 ‘본지풍광(本地風光)’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당시 성철 스님은 ‘본지풍광’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출간한 ‘선문정로(禪門正路)’를 받아본 뒤 “나는 이 책 두 권으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선문정로’는 선(禪) 수행의 올바른 방법과 근본 원리를 다양한 불교 원전을 인용해 제시한 책이고, ‘본지풍광’은 선불교의 수많은 공안(화두)과 게송 등을 다루며 그 의미를 설명한 책이다.

‘본지풍광’은 첫 출간 당시 수좌(선승)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제시하기 위해 매 결제때마다 법당에서 설한 구어체 법문을 풀어 출간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철 스님의 구술로 책이 한문투로 출간되면서 구어체 법문 부분이 빠졌다고 한다. 이번 책은 당초 한문투였던 ‘본지풍광’을 현대어로 풀어 쓰면서 ‘본지풍광’에는 실리지 않았던 성철스님의 법문을 녹취·정리해 일반인도 읽기 쉽게 꾸몄다. 그럼에도 내용이 간단하지는 않다. 화두 공부의 극치를 보여주는며 한 글자, 한 구절도 늘어지지 않은 채 선사의 안목으로 압축된 글이 참선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김영욱 연구원은 부록에서 ‘본지풍광 역주, 그 틀과 방향에 대한 시론’을 통해 이 책의 해제를 시도한다. 이를테면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에서 ‘이렇고 이러하니’는 철저한 긍정으로 아무리 확고히 긍정하여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부정의 결과로 돌아가고,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라며 철두철미하게 부정하여도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여기서 까마귀는 금오(金烏), 즉 태양을 상징하고, 토끼는 옥토(玉兎), 즉 달을 상징함. 해와 달이 돌며 아무런 장애 없이 세월이 흘러간다는 의미) 긍정의 열매를 맺는 것이 화두의 묘미라는 것이다.

또 ‘누른 머리 부처’는 교학(敎學)을, ‘푸른 눈 달마’는 조사선(祖師禪)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다. 따라서 ‘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은 앞에 제시한 도리가 교학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격외(格外)의 수단이라는 의미다.

스승의 법문을 정리해 책에 풀어 넣은 상좌 원택 스님은 책의 후기에서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깨쳐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모른다’는 큰스님의 말씀이 끝없이 이어짐에 지루함, 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며 “그 말씀은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자기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알음알이의 싹을 싹둑싹둑 잘라내는 큰스님의 반야검(般若劍·지혜의 칼)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고 조언했다.

또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성철의 생애 및 전서’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프랑스인 신부 서명원(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는 “‘본지풍광’에 있는 100여칙의 공안들을 통한 꾸준한 간화선 수행은 ‘선문정로’의 핵심개념인 돈오돈수를 체득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라며 “‘본지풍광’은 선종의 쌍벽서(雙壁書)인 ‘종용록(從容錄)’, ‘벽암록(碧巖錄)’과 함께 선종의 제삼벽서(第三壁書)로 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