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태극기 거부하는 북한의 속내

  • 문화일보
  • 입력 2008-03-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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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지난달 26일 대동강변에 있는 동평양대극장을 메운 1000여명의 북한 관객은 물론 TV 생중계를 지켜본 북한 주민들은 6·25전쟁 후 ‘원쑤’의 나라로 교육받았던 미국 국기가 인공기와 나란히 걸린 모습과 뉴욕 필이 연주한 미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북한 당국은 왜 주민들에게 일대 충격을 안길지도 모르는 이 같은 대담한 기획을 감행했을까. 영국 로이터통신의 보도대로 ‘북한의 외교 쿠데타’였을까. 북한의 뉴욕 필 초청부터 공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연출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만나 뉴욕 필을 지목해 평양 공연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1959년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했던 뉴욕 필은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방미를 앞두고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등 소련의 3개 도시를 순회 공연한 바 있는 ‘화음의 전령’이었다.

음악으로 이데올로기를 녹인 미국 관현악단은 1956년 처음으로 ‘철의 장막’을 헤친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1973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도 있지만 북한이 뉴욕 필을 꼭 집어 지명한 것은 1842년 창단한 미국 내 최고 역사, 그리고 뉴욕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지 않았을까.

뉴욕 필을 포함한 미국의 계산도 만만치 않았다. 힐 차관보는 안전을 걱정해 북한 공연을 망설인 뉴욕 필의 한국계 부악장이자 제2바이올리니스트 미셸 김 등 8명의 한국계 단원을 직접 설득했다.

뉴욕 필은 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 TV 생중계, 미국 국기 게양 및 국가 연주 등 일부러 북한이 곤란해할 것만 고른 듯한 조건을 제시했다. 연주곡 선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 등 미국 냄새가 물씬 나는 것으로만 일부러 선곡한 듯 보였다.

북한의 받아치기는 한 술 더 떴다. 모든 조건을 수용했고 평양 시내의 반미 포스터까지 자진해서 떼냈다. 특히 이튿날 27일 모란봉극장에서 예정됐던 뉴욕 필과 북한 국립교향악단 단원과의 연습 협연 곡을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의 현악8중주로 정하고 사전에 악보를 요청했다. 은행가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한 멘델스존은 북한에서는 부르주아 음악가라고 해서 연주되지 못했었다.

북한 지도부의 파격적 뉴욕 필 공연 수용은 핵문제로 외교적으로 꽉 막힌 상황을 문화 이벤트로 뚫어보려는 몸부림, 나아가 평양 공연의 외교적 상징성을 앞세워 ‘완전한 핵 신고’를 요구하는 미국의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려 슬며시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백악관이 평양공연으로 들뜬 세계를 향해 “공연은 공연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한 것도 북의 이런 속셈을 헤아렸기 때문일 듯싶다.

뉴욕 필 평양 연주가 있던 그 날, 개성에서는 남·북축구협회 관계자들이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과 관련한 제2차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북측은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한사코 반대했다.

월드컵 경기에서 상대국의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는 국제축구연맹(FIFA)기와 페어플레이기와 함께 FIFA 경기규정 22조에 나와 있는 의무조항이다. 즉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북한이 ‘성조기는 되고 태극기는 안 된다’를 고수하며 결국 제3국 개최로 몰고가는 것을 ‘이명박 정부와의 남북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정도로 분석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북한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한 것은 뉴욕 필의 평양공연이 결국 ‘본질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 아니라,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 북·미관계를 개선시켜 보려는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내비친 것이다.

[[이동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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