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어∼ 어∼ 악∼ 亞! 최고의 쾌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T익스프레스의 높이는 아파트 18층에 해당하는 56m. 아시아에 있는 우든 코스터 중에서는 최고기록이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쪽에서 출발한 열차가 이곳까지 올라왔다가, 곧 77도의 각도로 추락한다. 추락의 순간을 앞두고 멈칫하는 순간의 짜릿한 기분은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5월 경주월드에 설치된 또 다른 괴물 롤러코스터 ‘파에톤’. 발을 디딜 곳이 없는 데다 온몸이 허공에 노출된 느낌을 줘 속도감과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 괴물의 등에 올라 최고의 중력가속도를 맛보다.

초록색 라이더(열차)에 앉자마자, 당혹스러웠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허리의 벨트와 무릎을 누른 안전바 밖에 없었다. 라이더에는 심지어 열고 닫는 문도 없었다. 몸은 완전히 허공에 노출됐다. 대부분의 롤러코스터 라이더는 U자 모양의 바가 어깨를 눌러줘 안정감이 느껴졌었다. 양쪽에 문이 달려 있거나, 최소한 쇠사슬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T익스프레스의 라이더에서는 무릎을 누르는 안전바 하나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허공에 의자를 놓고 앉은 느낌이랄까. 첫 공포는 ‘개방감’이었다. 개방감이 곧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스르르…. 라이더는 경사면을 타고 아파트 15층 높이라는 56m까지 올랐다. 덜컹거리며 톱니나 체인으로 오르는 다른 롤러코스터와는 달리 굵은 쇠줄로 라이더가 부드럽게 끌어올려졌다. 비명은 이때부터 터져 나왔다. 레일을 오르면서 에버랜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지만 누구도 경치를 감상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곧 이어질 급경사의 추락의 공포가 발가락 끝부터 간지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상에서 잠깐 미끄러지던 라이더가 머리를 아래로 꺾더니 땅을 향해 꼬꾸라졌다. 모든 롤러코스터가 다 그렇듯 첫 번째 추락이 하이라이트다.

우르르르~. 재원표에는 77도의 낙하각도라고 써있었지만, 체감각도는 90도를 넘는 것 같았다. 마치 레일이 예각으로 꺾이는 것 같았다. 으아아악~. 비명의 절정이다. 순간 몸이 허공으로 뜨는 것 같은 느낌.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했다. T익스프레스를 제작한 스위스 인타민사의 관계자는 이 구간의 중력가속도 값이 4.5G라고 했다. 자기 몸무게 중량의 4.5배에 달하는 힘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놀이기구가 2G에 불과하고, F16 전투기 조종사가 느끼는 중력가속도가 6G 정도니 T익스프레스의 4.5G 값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 눈앞으로 다가오는 나무 구조물들

안심하긴 일렀다. 두 번째의 낙하는 첫 낙하보다는 낙차가 작았지만, 첫 공포의 기억이 남아 두려움이 더했다. U자의 곡선 끝에서 속도가 줄어드는 듯하다가 다시 우르릉거리며 낙하한다. 공포감을 재는 계기판이 있다면, 속도가 주춤주춤 줄어드는 레일의 정상쯤에서 최고수치를 기록하지 싶다. 두 번의 낙하 이후로는 낙타 등처럼 오르내리는 ‘카멜코스’다. 어떤 때는 공중에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또 어느 때는 깊숙이 가라앉는 느낌이 교차한다.

전체 구간에서 엉덩이가 붕 뜨는 무중력 상태는 12번이나 계속된다고 했지만, 도무지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어 코스는 8자를 그리며 회전하는 S코스와 급커브를 틀며 회전해 내려오는 나선형 코스로 이어진다. 튕겨나갈 듯한 공포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레일 위를 첩첩히 가로지른 나무 구조물들. 낙하와 회전을 거듭할 때마다 엇갈린 나무 구조물들이 마치 충돌할 듯 눈앞으로 휙휙 다가왔다.

3분여 동안의 운행이 끝나고 라이더는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벌겋게 상기된 표정. 일부는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지만, 그보다 무릎 쪽에 고개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라이더에서 내려선 뒤에는 모두들 밝은 얼굴로 옆자리의 친구들과 ‘굉장한 경험’을 나눴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가장 의아했던 것이 공포의 경험이 어떻게 쾌감이 될까 하는 것이다. 극대화된 공포가 불쾌한 감정이 아닌 즐거운 경험이 되는 비밀. 그 비밀이 바로 롤러코스터에 숨어있다.

# 아시아와 세계의 기록을 무너뜨리다.

국내 테마파크에 세워진 롤러코스터(동력장치 코스터 포함)는 모두 52개. 모두 미국, 일본,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수입된 것들이다. 저마다 속도와 높이, 낙하각도를 내세우고 있지만 T익스프레스는 이들 롤러코스터들이 세운 기록을 남김없이 갈아치웠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는 꿈돌이랜드의 공포특급으로 시속 90㎞를 기록했다. 그러나 T익스프레스는 최고시속 104㎞로 이 기록을 가뿐히 넘어섰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T익스프레스는 아시아 기록도 대부분 경신했다. 전국에 238개의 롤러코스터가 있어 ‘롤러코스터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손꼽히는 우든 코스터의 높이와 속도 등의 기록도 모두 깼다. 특히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들어내는 낙하각도의 경우는 T익스프레스가 전 세계 165개의 우든 코스터 가운데 최고다. 철제 롤러코스터의 경우는 90도 낙하각도를 가진 것이 흔하지만, 우든 코스터는 나무라는 자재의 한계로 급경사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2005년 세워진 미국 홀리데이 월드의 우든 코스터 ‘보이지’가 66도의 낙하각도로 세계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듬해인 2006년 미국 식스플래그스 그레이트 어드벤처의 ‘엘 토로’가 76도의 낙하각도로 새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 기록은 낙하각도 77도의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가 등장하면서 깨졌다. T익스프레스의 탑승시간은 3분으로 웬만한 국내 롤러코스터의 2배에 달한다. 짧은 시간 같지만, 라이더에 올라 추락의 공포를 경험하면 그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다.

# 공간을 가르는 아찔한 롤러코스터

이제 국내 롤러코스터의 최고 강자는 정해졌다. T익스프레스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기록을 가진 테마파크의 괴물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괴물이 한 마리 더 우리 곁에 도착해있었다. 지난해 5월5일, 경북 경주의 테마파크 경주월드에는 ‘파에톤’이란 이름의 독특한 롤러코스터가 선보였다. 소리 소문 없이 들여온 파에톤을 일반인들은 과소 평가했지만, 마니아들은 이 새로운 롤러코스터에 열광했다.

롤러코스터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보통 롤러코스터는 동력전달방식이나 재질, 운행스타일에 따라 10여가지 종류로 나뉜다. 이 중 레일의 형태만으로 분류해봐도 ▲낙타 등처럼 오르내리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카멜형부터 ▲나사가 감기듯 돌아가는 콕스크류형(서울랜드 ‘블랙홀 2000’), ▲똑바로 큰 원을 수직회전하는 루프형(롯데월드 ‘후렌치 레볼루션’) ▲레일 아래로 라이더가 붙어있는 행잉라이더형(에버랜드 ‘독수리요새’) ▲끊겨있는 레일에서 라이더가 좌우로 진자운동을 하는 선형모터형(드림랜드 ‘아토믹코스터’·지난 2월 말 폐장)까지 다양하다.

경주월드에 등장한 파에톤은 국내 최초로 도입된 ‘인버티드형’이다. 인버티드형이란 레일 아래 쪽에 라이더가 붙어있고 발판을 제거해 발밑이 완전 개방돼있는 형태. 탑승객들이 운행 도중 바닥을 내려다보게 돼 같은 속도라도 더욱 폭발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파에톤은 T익스프레스만큼은 못하지만, 높이나 속도 등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89.9㎞. 아시아 지역의 인버티드형 롤러코스터 가운데 일본 오사카 엑스포랜드의 ‘오로치’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레일의 높이도 45m에 달해 대만 레오푸 빌리지테마파크의 ‘스크리밍 콘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파에톤의 명성은 오히려 외국에 더 알려져있다. 일반 운행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등 각국의 롤러코스터 동호회 등에서 오로지 파에톤 탑승을 위해 경주에 찾아왔었다.

롤러코스터는 테마파크의 상징물이다. 롤러코스터의 비명이 없는 놀이공원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높은 지지대 위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레일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린다. 그러나 T익스프레스는 그동안의 롤러코스터와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이전의 롤러코스터가 ‘누구나 탈 수 있되, 담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것은 아예 ‘탈 수 있는 사람’과 ‘탈 수 없는 사람’이 갈린다. 체감의 속도와 공포는 이제 극한으로 올라섰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지금 막 도착한 이 ‘괴물’의 등에 훌쩍 올라탈 수 있을 것인가.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