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서 ‘小지역주의’ 위력 여전

4·9 총선 격전지에서 ‘소(小)지역주의’가 사실상 승부를 가른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8대 총선 245개 선거구별 개표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12곳의 시·군 복합선거구의 경우 자신의 지역 출신에게 표를 몰아주는 소지역주의적 투표 행태가 극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7곳의 통합선거구에서는 ‘뉴타운’ 등 지역 내 현안에 따라 읍·면·동별로 후보간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승부 가른 ‘소지역주의’= 대형 이슈 없이 진행된 이번 총선은 박빙 접전지마다 “내 고장 출신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소지역주의가 표심을 좌우했다. 이번 총선 최대 이변으로 기록된 경남 사천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승리한 것은 한나라당 공천 과정을 주도했던 이방호 의원에 대한 지역 내 반감 탓도 있지만, 지난 95년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소지역주의가 더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전체 표 차는 178표에 불과했지만 사천 출신인 강 의원은 구 사천군에서 이 의원보다 3700여표를 더 받았다. 구 삼천포시에서는 삼천포 출신인 이 의원이 강 의원에 3000여표 앞섰다. ‘사천 출신도 국회의원 한 번 해보자’는 지역 정서가 이 같은 파란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남 무안·신안도 소지역주의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위에 그쳤던 무안 출신 무소속 이윤석 당선자가 무안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역전을 이뤄낸 것이다. 신안 출신들이 ‘독점’했던 정치를 바꿔보자는 무안 지역 여론이 막판에 꿈틀했던 것이다. 신안 출신인 통합민주당 황호순 후보와 무소속 김홍업 의원이 신안 표를 반분한 것도 이 당선자를 도왔다. 인근 지역구인 해남·완도·진도도 ‘해남 출신이냐, 완도 출신이냐’는 표심이 작용했다. 해남 군수 출신인 민화식 민주당 후보는 해남에서 무소속 김영록 당선자에게 7000여표를 앞선 반면, 완도군수 출신인 김 당선자는 완도에서 민 후보를 1만2000여표 차이로 눌렀다.



경북 고령·성주·칠곡에서는 성주 출신인 한나라당 석호익 후보와 칠곡 출신인 무소속 이인기 당선자가 혈투를 치른 결과, ‘칠곡’이 승리했다. 강원 속초·고성·양양은 무소속 송훈석 후보가 고성에서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속초 출신인 한나라당 조동용 후보에게 승리했다. 뒤집어 말하면, 조 후보가 패한 것은 속초 출신인데도 속초에서 조 당선자와 표를 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은 음성 출신인 민주당 김종률 당선자와 진천군수 출신인 한나라당 김경회 후보가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둘 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김 당선자가 괴산·증평에서 1800여표를 앞서면서 승리했다. 충남 논산·계룡·금산은 이인제 무소속 당선자가 다른 논산 출신 후보들보다 논산에서 크게 앞서면서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변형’된 소지역주의 = 총선 이후에도 ‘뉴타운 공약(空約)’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서울 격전지 중 상당수가 뉴타운 표심이 승패를 좌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갑에서 2759표 차로 승리한 한나라당 현경병 당선자는 ‘월계동 뉴타운’추진 공약으로 월계1~4동에서 민주당 정봉주 의원에게 1573표를 앞섰다. 금천구의 경우도 한나라당 안형환 당선자가 이목희 민주당 의원에게 342표 차로 승리했는데, 뉴타운 공약을 한 시흥3동에서만 650표를 더 얻었다.최소 표차(192표) 승리를 기록한 성남 수정의 한나라당 신영수 당선자는 신촌동, 고등동 등 일부 지역에서 승기를 잡았고, 712표 차로 이긴 남양주갑의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대부분 지역에서 박빙 승부 끝에 호평동, 평내동에서 승부를 냈다.

경남 창원을과 울산 북은 노동자 밀집 구역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집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창원을에서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17대에 이어 노동자 밀집지역인 사파동, 가음정동 등에서 승세를 굳혔다. 울산 북은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이 대부분 지역에서 앞섰지만, 양정·염포동에서는 이영희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1위를 내줬다. 경북 경주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유치라는 지역개발 공약이 표심을 흔들었다. 유치가 확정된 양북면 등 동경주에서는 정종복 한나라당 의원이 앞선 반면, 김일윤 친박연대 당선자는 경주 시내 유치 공약으로 경주시에서 정 의원을 7000여표 차로 앞섰다.

김충남·권로미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