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너지가 대한민국을 바꾼다>“한국인 원형기질 ‘靜中動’ 모바일시대에 최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황상민(오른쪽) 교수가 “우리 한국인들이 이제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 우리는 누구인가를 편견 없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대담자인 윤명철 교수가 경청하고 있다. 김호웅기자

참석자:황상민 연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교수
사 회:장재선 전국부 차장


심리학자와 역사학자가 만나 ‘우리 시대 한국인의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대 한국인의 심리를 연구해온 황상민 연세대 교수와 한민족의 기질을 학문적으로 탐구해온 윤명철 동국대 교수. 지난 15일 오후 6시 문화일보 인터뷰실에서 열린 대담에서 두 사람은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은 문화일보가 5000호 특집 기획으로 ‘긍정 에너지 …’시리즈를 연재한 것에 대해서 “당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 시의적절한 시도였으나 ‘민얼굴’을 드러내거나 대안 제시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외환위기 때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에 나섰던 한국인의 저력이 세계화시대의 에너지로 나타나기 위한 핵심 키워드가 ‘공동체 회복’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황 교수는 “이 시대 한국인들은 공동체가 각 개인의 개성과 목소리를 다양하게 반영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일체감을 갖고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21세기 모바일시대에 적합한 한국인의 원형기질, 즉 탐험·모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한민족 공동체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는 담론을 제시하겠다는 자부심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긍정 에너지…’ 시리즈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황상민(이하 황) = 이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구나, 우리 한국인들이 그런 필요성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의적절했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것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끌어내다 보니 민얼굴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윤명철(윤) = 9개의 주제 선택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에 대한 통념이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차 있는데, 9개 주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끄집어낸 다음 긍정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역사학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부정적 이미지의 반론으로서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부정과 긍정을 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기 기획을 기대해 본다.

― 이 시리즈의 몇 개 주제에서는 당대 한국인의 기질이 형성된 것에 대해 역사적 근거와 사례를 들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와 역사학자의 시각이 다를 것 같은데….

황 = 당대 한국인의 기질을 역사적 연원으로 설명하는 시도는 견강부회의 위험이 있다.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국민성, 자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다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이랬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15세기 한국인이 21세기 한국인과 같은 사람이냐는 질문에서 역사학자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심리학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유전인자로부터 전해지는 점은 있겠으나, 조상의 기질을 통해 당대 한국인의 그것을 설명하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윤 =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결과로 현재의 인간이 있는 것이다. 민족, 국민성이라는 용어가 있기 전에 이 땅에 인간은 살아 있었고, 유사한 언어와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과거의 경험과 생각들은 기록·문화 현상을 통해서건, 심리적 현상을 통해서건 전승된다. 민족이든, 국가든 한 단위의 사람들 기질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띤다. 이 때문에 현재의 모습을 살피기 위해 과거의 우리 모습을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시대별로 문화와 평가가 담긴 기록이 남아있다. 그 기록에 의거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황 = 현재 한국인의 모습과 행동을 역사적 연원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인간에게 자기의 행위, 특성에 뭔가 근원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뭔가 근원이 없다고 하면 상당히 혼란스러워하는 심리가 있는데, 근원에의 규정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에서 만들어진다.

윤 = 우리가 현재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 중에 역사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냄비 근성’ ‘학연·지연’ ‘우리 민족이 한으로 가득 찼다’는 것 등은 역사학자 관점에서 보면 사실에 바탕하지 않는 통념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통념은 우리 민족과 경쟁 관계에 있던 중국과 일본 사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었고, 현대에 와서는 서구적 사고관 때문에 굳어졌다. 이제 우리의 문헌, 예술작품 등을 통해 우리의 민족성과 국민성을 정확히 찾는 것이 중요하다.

― 당대의 한국인들의 심리적 특징은 무엇인가.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황 =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때그때마다 이익이 되면 이쪽 저쪽 붙을 수 있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게 나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이다.‘한국 사람들이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았나’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10년 전에는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람은 과거를 미화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기억의 왜곡현상이 있다. 한국 사회는 ‘과거에 인간적, 공동체적인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깨졌다’는 미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으나 현재 직면한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다.

윤 = 시대와 공간이 달라도, 인간이 지향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 행복하고 편안한 사회가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 사람들은 그 이전 시대보다 지금 훨씬 더 어려움에 처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격변기를 맞아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갈등이 격화되고,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남북 문제도 한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며 갈등을 부추긴다.

―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행감’이 공동체의 붕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외환위기 때의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 등을 보면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열망도 있는 듯한데….

황 = 인간은 실제로 공동체 의식이 강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좋은 공동체는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잘 된다. 구성원 개인이 집단에 매몰되지 않고 각각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게 안된다. 집단 속에 개인이 다 죽어야 공동체가 산다고 인식한다. 10년전 외환위기를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외환이 바닥났을 때 이를 인정하지 않고, 펀더멘털이 튼튼하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도층이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이기적으로 도피하면, 피지배계층이 나서서 그것을 해결한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우리에게 특유한 이게 무슨 심리일까, 심리학자로서 해결할 수 없어서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 공동체 회복이 행복의 전제조건이라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공동체 정신 운동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황 = 공동체가 회복되기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은 공동체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개체성에 대해 인정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충분히 수용할 만한 상황에 있지 않다. 사람들이 모두 대세를 따르려고 한다. 교육 문제가 그렇고, 부동산 문제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근대 시민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공동체 정신 운동을 운위하는 것은 혹시 과거 개발시대의 관제운동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윤 = 과거와 같은 관제운동엔 동의하지 않지만, 정신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질과 정신이 함께 가야 21세기의 삶에 맞는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민족이라고 하든, 공동체라고 하든 하나의 ‘단위’에 있는 긍정적 공통분모를 이상(理想)으로 지향할 수 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 정체성과 자아를 찾으면, 새로운 정신문화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이라고 믿는다.

― 한국인의 기질을 긍정 에너지로 승화시키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나

황 = 사람들이 각자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튀는 인간을 봐주자.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좀 내버려두자.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맛(taste)’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각각의 맛들이 다 살아 있으면서 어우러질 때 진짜 최고의 요리가 나온다.

윤 = 동감한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자의식이 강하다. 이 자의식이야말로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다. 그런데 이 자의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외부 세력이 조작했다. 그것을 이 시대에 바로잡아야 한다. 21세기는 모바일시대, 유목문화시대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원형 속에 잠재해 있는 동적(動的)인 탐험·모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면서 조선시대에 형성된 정적(靜的)인 문화 유산을 아울러 ‘정중동(靜中動)’의 새로운 세계관을 창출하면,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각종 위기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새 세계관을 우리가 내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리 = 심은정기자 fearless@munhwa.com

◆황상민 교수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석·박사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장(2000∼2002)▲저서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등 ▲현재 연세대 교수(심리학)

◆윤명철 교수
▲성균관대 역사학 석·박사 ▲해양문화연구소장 ▲대한해협, 황해 등 뗏목 탐사 ▲저서 ‘고구려의 정신과 정책’ 등 ▲현재 동국대 교수(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