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협상 ‘새 국면’>2008 한·미 쇠고기협상-1998 한·일 어업협정 5大 닮은꼴

쇠고기 파동이 재협상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때 서둘러 타결했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이듬해 재협상에 들어갔던 한일 어업협정의 재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년 전의 전철을 되풀이하며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양대 협상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우선, 두 협상은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먹을거리’를 놓고 벌어진 현안이란 점에서 다른 어떤 추상적인 국익논쟁보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민생 체감지수가 높았다. 촛불집회에서 “너는 한우 먹고, 우린 미친 소 먹나” “대통령 아들부터 먹이자”는 구호가 난무한 것은 기본적인 국민의 건강권마저 도외시한 무심한 정부를 향한 항의로 해석된다. 98년 어업협정 당시에도 이른바 ‘서민 반찬’으로 사랑받던 꽁치, 갈치, 고등어, 오징어 등 어장을 잃어버렸다는 주부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둘째, 양쪽 다 정권 출범 직후 정치적 고려로 인해 서둘러 협상을 타결하는 바람에 허점이 생겼다. 98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 ‘21세기 신(新)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하기 위해 협상을 서둘렀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외환위기로 부도난 정부를 넘겨받은 김 전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30억달러의 차관을 얻는 대가로 어업을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감수해야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4월 방미 때 부시 미 대통령과의 캠프데이비드 회동 하루를 앞두고 ‘선물용’으로 무리하게 쇠고기 협상을 졸속 타결했다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셋째, 실무자의 협상능력 부재로 결국 재협상에 돌입하게 됐다는 점이다. 98년에는 쌍끌이 조업을 협상 항목에서 제외한 채 타결했다가 들끓는 비난여론을 받자 다음 해 재협상에 들어갔다. 이번 쇠고기 협상도 월령 30개월 미만과 특정위험부위(SRM) 제거를 요구하는 실무적 협상 테크닉 부족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넷째, 사건의 파문으로 99년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퇴했다. 이번에도 정운천 농식품부장관 및 청와대비서실이 대거 퇴진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리 미국, 일본 등 현실적 강대국과의 협상이라 해도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자국농가의 이익을 위해 안전성이 100% 검증되지 않은 쇠고기를 강요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 외환위기를 이용해 한국에 유리한 어업조건을 밀어붙인 일본의 자세는 자존심 강한 한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실용’보다 국민들의 ‘정서법’이 앞선 것이다.

노성열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