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 Inside >오바마 열풍 ‘그’의 펜끝에서 나온다

‘변화(change)’,‘희망(hope)’, ‘통합(unity)’이 미국에서 거대한 오바마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을 꼽는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간결하고, 흡인력이 있는 내용의 연설은 오바마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조화를 이뤄 다른 후보자들보다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바마 열풍의 숨은 공신 중 한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26세의 스피치 라이터(연설문 작성자)존 패브로다. 유권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르는 정치 스피치 라이터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 연설은 오바마가 매케인보다 한 수 위 = 미국 폭스 TV는 최근 대선 후보의 연설을 평가하는 인터넷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오바마의 연설이 간결하고 생기있는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연설은 불친절하고 불필요한 문장들로 구성됐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력으로만 대통령을 뽑는다면 매케인이 이기겠지만, 연설에서는 오바마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 자문을 담당했던 아이반 레빈은 매케인의 연설이 호소력이 없는 것은 매케인 자신의 책임만이 아니라 그의 스피치 라이터인 마크 샐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 오바마 진영의 3인 영파워 = 오바마의 스피치 라이터 팀은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팀장 존 패브로를 포함해 애덤 프랭클(26), 벤 로즈(30)로 모두 30세 이하 젊은이들이다. 패브로가 오바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매사추세츠주 우스터 지역에 있는 홀리코스터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진영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오마바가 그 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 기조 연설 리허설을 하는 자리에서 연설문 중 일부 문장을 다듬어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랭클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전설적인 스피치 라이터 테드 소렌슨의 회고록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가 ‘제 2의 케네디’에 비유되는 것과 관련, 오바마의 연설에는 젊은 세대에게 희망의 빛을 전달하려는 케네디의 손길이 닿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스피치 라이터, 주제와의 전쟁 = 스피치 라이터는 정치인에게 ‘브레인 파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연설문 작성가였던 소렌슨을 ‘지적 혈액은행’이라고 불렀다. 스피치 라이터는 정치인의 생각과 정책을 가장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할 뿐만 아니라, 연설문에 정책적 조언까지 반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피치 라이터들의 일상은 커피와 수면 부족과의 전쟁이 기본. 6년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자였던 마이클 거슨은 부시 대통령 취임사 초고를 작성하는 며칠 동안 새벽 5시 반부터 스타벅스 커피숍을 찾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 진영의 패브로도 연설문 작업때는 새벽 3시에 취침을 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이번 경선 기간에 6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언어와 싸움을 하는 스피치 라이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후보의 이미지를 잘 형상화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 것. 거슨은 15분짜리 부시 대통령 연설에 ‘용기(courage), 열정(compassion), 교양(civility), 품성(character)’라는 4가지 주제를 녹여 호평을 받았다. 젊은 보수 논객 데이비드 프럼은 2001년 부시의 연두교서를 쓸 때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을 가리키는 말로 ‘악의 축’이란 표현을 사용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 역사상 유명한 스피치 라이터 = 역사적으로 훌륭한 정치인들 옆에는 늘 능력있는 스피치 라이터들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극작가이자 신문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버트 셔우드에게 연설문 작성을 맡겼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저널리스트 에밋 휴즈의 도움을 받았다. 소렌슨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중 유명한 구절인 ‘조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를 탄생시켰다.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저널(WSJ) 칼럼리스트인 페기 누난에게 의존했다. 정치인 스스로가 전 세계를 감동시킨 스피치 라이터였던 사례도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3년 게티즈버그에서 총 226단어로 구성된 2분간의 짧은 연설에서 남북 전쟁의 의미와 자유의 기치, 민주정부의 원칙을 압축해 미국 역사상 최고의 기념 연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가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했던 인종차별에 관한 연설은 미국 역사에 길이남을 명연설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그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졌다.

심은정기자 fearles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