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김선규기자
오는 13일 인문대학장 취임을 앞둔 변창구(57·사진)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그는 인문학을 닫힌 세계에서 열린 사회로 끌어내기 위한 과제를 부여잡고 고민하느라, 유난히 극성스러운 올 폭염은 안중에도 없다. 현대 희곡과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며 햄릿을 수십차례에 걸쳐 탐독한 교수여서 어떤 질문이든지, 명쾌한 답 대신 망설임이 앞서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인문학의 위기가 있었습니까. 사회에 인문학이 뭔지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지난 5일 오후 인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젊은 인문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해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는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만 마칠 만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썼는가 봅니다. 셰익스피어가 다루는 국가 경영에 관한 이야기나 반란, 통치, 죽음, 인간관계 등 각종 사건과 소재는 책을 들춰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이럴지도 몰라, 저럴지도 몰라’하고 생각해볼 부분이 워낙 많이 녹아 있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이나 법학 서적은 애매모호하면 안 됩니다. 인생은 그러나 애매모호함의 연속이고,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게 문학의 묘미입니다.”
―법학이나 사회과학처럼 인문학이 갖고 있는 자리가 있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인문학 위기가 정말 있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저희 인문대 최고경영자 과정(AFP)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한 분들이 인문학을 원한다는 얘기입니다. 최고경영자들의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있고, 거기를 인문학이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사회에 인문학이 뭔지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문학은 문학작품이나 역사를 통해 인간이 무엇이고 사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더불어 사는 지혜와 인격적인 가치, 의미를 가진 삶을 얘기해 주는 겁니다. 삶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점을 알려주면 인문학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겠죠.”
―국론이 분열되고 시국이 어려울수록 우리 사회에 큰 스승이 없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과거에는 철학적이나 사상적으로 우리 사회에 공통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버지는 이런 지위, 대통령은 이런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서로가 승복하고 최소한 60~70%는 동의하는 사회라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척되겠죠. 우리가 주어진 여건을 감안해 잘살고 있다는 것은 결국 조상들이 잘했다는 의미인데, 과거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편입니다.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해 높이 살 부분은 높이 사줘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매도하다 보니까 과거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현상이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또 지식인 사회의 역할은 어떠해야 합니까.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이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고 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남을 이해하게 되고 관용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요즘 자꾸 뭔가 만들자는 얘기를 합니다. 교수들이 비판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뭘 만들지는 못합니다. 항상 누구를 평가할 때도 공과 가운데 잘못만 부각시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 워싱턴이나 링컨 대통령도 부정적인 면이 적잖지만 미국은 그들을 평가합니다.”
―좋았던 것을 복원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문학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맞습니다.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를 사회에 알리는 일을 비롯해 여러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희 인문대에 열린 광장, 즉 외부 인사를 모셔서 인문대 사람들이 얘기를 듣는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넓히고, 인문학을 실생활에 연결시키는 작업도 채비 중입니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가 있다면 역사적으로 또 사회학적 관점 등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도움이 되겠죠. 촛불 시위도 사회현상이지만 문화현상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예를 통해 나름대로 시사하는 부분을 얻고 사회에 뭔가 메시지를 던져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문학은 정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능성을 얘기하다 보면 ‘난 이렇게 생각하지만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고, 이게 소통입니다.”
―인문학이 나름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세상으로 나가는 데 어려움도 예상됩니다.
“인문대 내부에서도 너무 캠페인화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화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상대적으로 많이 할 경우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문대 주류로 올라선 80년대 학번 교수들은 인문대가 젊고 변화할 의지가 있는 데다 미래를 적극 열어가겠다는 의욕이 앞섭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말을 듣고 그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대학사회의 키워드로 등장한 통섭이나 융합을 단과대별 장벽이나 과별 장벽 해소와 연관짓는 것은 무리입니까.
“인문학에 통섭은 일찌감치 도입됐는 데도 학과체제가 유지되고 있어서 마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대나 공대 출신도 인문대 교수로 와 계시고, 인지과학이나 공연예술 등의 연합전공도 개설돼 있습니다. 타교 출신의 교수도 영문과의 경우 30%가량인 것을 비롯해 인문대가 평균 15%선으로 다른 단과대의 임용률과 견줘 높은 편입니다. 인문대 교수들이 다른 단과대와도 많이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면 장벽 문제는 해소 쪽으로 더욱 진전되리라고 봅니다.”
―지난 학기 때로 기억합니다. 인문대 동창회 출범이 화제가 됐습니다.
“인문대 동창회 분들에게 인문대를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겠습니다. 동창회를 통해 인문학의 저변 확대에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왜 인문학이 의미가 있는지 동창생들도 알게 해야 합니다. 동창회 쪽에 학교 관련 자료도 드리고 강의 교류 등 일종의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제가 졸업할 당시에는 인문대의 경우 졸업 앨범도 없었습니다. 워낙 개인주의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학기 인문대의 진단 평가 가운데 우선 추진하고픈 게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학생들 교육을 잘 시키고 싶습니다. 인문대를 나온 사람이 자긍심을 갖도록 간판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그 중 하나가 외국어와 글쓰기로, 인문대를 졸업할 때까지 외국어 두 개는 확실히 마스터하고 국어로 글쓰기를 완벽히 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좀 필요합니다. 강사를 더 초빙하고, 제대로 대우를 하면서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독일어 정규시간이 3시간이면 여기에 2시간을 더 교육시키는 식입니다. 그래야 졸업할 때 독일어 원전을 읽고 자유자재로 언어를 구사할 수준이 될 겁니다. 인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외국어도 잘하고 글도 잘 쓰더라 하는 평가를 받게끔 하고 싶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진단 평가도 하려고 합니다. 지난 학기의 진단 평가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했고 행정 위주로 실시됐습니다. 학생들에게 왜 인문대에 왔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왜 대학원 가기를 꺼리는지, 국가고시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지 등 한마디로 인문대생들의 꼴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교수도 충원하겠습니다. 졸업생들을 상대로 인문대의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도 차제에 물어 볼 생각입니다. 인문대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지금 준비팀에서 학생 참여를 포함해 구체적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실력만큼 영어 성적이 좋지 않다는 질책을 왕왕 들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언어를 외워야지, 너무 이성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더군요. 약이 오른 것도 있었고 해서 영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조교할 당시 교수님들을 뵈면 여유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지만 지금 교수사회는 경쟁으로 숨이 탁탁 막힐 지경입니다. 70~80년대는 문화수입국이어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책 몇 권만 가져오고 번역하면 몇년 지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세요. 인터넷 발달에 힘입어 3일이면 전세계에 퍼집니다. 교수가 웬만한 얘기를 해도 학생들이 속지 않습니다.”
인터뷰=문성웅 사회부장 swmoon@munhwa.com
■ 邊교수는 누구…
셰익스피어 및 현대 영미 희곡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전문가. 그럼에도 1981년 정원보다 30% 더 늘려 뽑았던 졸업정원제 덕택에 교수가 됐다고 스스로를 낮춘다. 졸업정원제 도입에 따라 교수 수요가 늘어나긴 했다. 정운찬 총장 시절 교무부처장과 교무처장을 연달아 맡을 만큼 업무 능력은 검증을 받았다.
조용한 성격으로 인해 손해를 가끔 보는 편이다. 가령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업무 추진력이 약하지 않을까 선입견을 갖는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와 마주 앉아서도 조근조근 자신 쪽으로 이끌어가는 장점, 즉 소통에 강하다. 학생들의 대소사도 잘 챙기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 학생들도 잘 따르는 편이다. 또 업무와 소통에 필요한 술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며 학창시절 별명은 이름과 연관된 발음 때문에 ‘반창고’.
▲1951년 제주 출생 ▲경남고·서울대 영문학과 ▲미국 털사대 박사 ▲건국대 영문학과 조교수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 회장 ▲서울대 인문대 교무부학장 ▲서울대 교무부처장 ▲서울대 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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