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大혼돈’>美경제 ‘디플레 공포’에 떤다

미국 경제가 ‘R’의 공포에 이어 ‘D’의 공포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R는 ‘침체, 후퇴’를 뜻하는 영어단어‘리세션(recession)’의 약자이며, D는 ‘물가하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약자다. 그동안 미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당국자들은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 ‘리세션’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향후 미국경제가 상품및 자산가치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주가 하락과 부동산 거품붕괴로 10년넘게 제로(0) 성장률을 기록했던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실업률 25%를 넘나들던 1930년대 미국 ‘경제대공황’ 수준의 디플레이션이 아직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정책입안자들이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책마련에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가고 있다.

19일 CNN머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상당수 미국인들이 금융위기와 롤러코스터 증시로 인한 심리적 공황을 우려하고 있으나, 경제전문가들은 공황뿐 아니라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버나드 바우몰 경제전망그룹(EO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요 감소로 인해 가격이 떨어지다보면 가격은 생산원가보다도 낮아질 수 있다”며“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감원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요는 더욱 줄어들고, 가격은 다시 떨어지는 ‘하강의 악(惡) 나선형’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디플레이션 비율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의 바로미터로 통용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9월 들어 전달에 비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드는 등 모든 지표는 현저히 디플레이션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던 트러스트 그룹의 폴 카스리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이션과의 한판 승부는 주식과 주택가격 급락같은 자산가치의 하락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며 “이는 대출담보물의 가치를 줄여 금융기관들에게 손실을 안겨주고, 이로 인해 신용이 경색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고 진단했다. 카스리엘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었고, 이로 인해 은행들은 정상적인 대출업무를 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내년 초 임기를 시작할 새 미국 대통령도 관련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그 수단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다. 일단 기준 금리를 인하, 사실상 제로 금리로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채 이율을 떨어뜨려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저축보다는 소비를 선호하게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는 카드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실질적인 수요 확대와 고용률 제고, 지출확대로 연결되기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거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방법이라는 분석이 많다.

양성욱기자 feelgoo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