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사회적 진보-정치적 보수 ‘탈이념’ 세대”

찰스 암스트롱 (46) 미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이자 한국학센터 소장은 오바마 세대의 중견역사학자다. 안식년을 맞아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를 5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그는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훈련받은 역사학자로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백인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던 미국 최고의 선출직에 흑백혼혈 출신 인사가 당선됐기 때문일까, 그는 “오바마 덕분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자긍심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번 대선은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선거이자 기억에 남은 선거”라면서 오바마 혁명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역사학자로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신다면.

“미국역사상의 대사건이다. 100여년간 이어진 노예제, 투표권이 없던 시대를 거쳐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거쳐 흑백평등을 이룬 지 40여년이 됐다. 오바마는 흑인이 아니라 흑백혼혈이다. 따라서 오바마의 당선은 흑백인종시대를 넘어 탈인종(post racial )시대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아프리카 유학생의 혼혈아들이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미국이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미국사회에 엄존하는 인종의 벽이 이번 대선으로 무너졌다는 뜻인가.

“미국의 30, 40대는 인종문제에 관용적이다. 대학가 젊은이들은 인종 간 결혼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다. 오바마는 백인 유권자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람들은 브래들리효과를 우려했지만 현재 미국은 브래들리가 출마했던 1982년과 완전히 다른 다인종사회가 됐다.”

―오바마 당선이 상징하는 의미는.

“미국은 그간 지역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빈부격차와 인종격차가 심했지만, 오바마는 그것을 치유하겠다고 나섰고, 그런 혼혈인종적 배경을 갖고 당선됐다. 그런 만큼 미국은 더이상 백인이 우월적 지위를 갖는 사회가 아니라 여러 인종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됐음을 오바마가 입증한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동과의 관계에 있어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통합과 협력을 얘기하게 됐다.”

―오바마의 성공요인은.

“오바마가 말하는 방식은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반면 존 매케인 후보는 과거지향적 방식으로 얘기해왔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인들은 근본적 변화를 갖고올 지도자를 열망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시대와의 단절을 희구했다. 오바마는 그런 열망 덕분에 당선됐다. 그는 좋은 대통령에 머물지 않고 위대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오바마세대 역사학자로서 오바마세대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그는 1961년 태어나 1979년 컬럼비아대에 입학한 79학번세대인 반면 나는 62년 태어나 80년 예일대에 입학한 80학번세대다. 오바마는 나보다 4개월 먼저 태어났는데 유년시절을 하와이에서 보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와이는 원래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다인종사회인 데다 인종 간 결혼이 보편적이다. 하와이는 그런 점에서 미래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아주 희망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흑인에 대한 차별극복에 머물지 않고 여러 인종들의 권리를 한층 전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이 다인종사회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아마 앞으로 30, 40년 후에 백인은 소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반전세대의 자식세대는 부모세대와 어떤 차별성이 있을 것으로 보느냐.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한 것은 클린턴으로 상징되던 60년대 베트남전세대의 퇴장을 의미한다. 우리 오바마세대는 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시대에 고등학교를 다녔고 80년대초 로널드 레이건시대에 대학에 들어갔다. 포스트 베트남전 레이건 혁명 이전시대의 자유주의적 환경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뒤 80년대 보수화하는 환경속에서 대학생활을 한 것이다. 그런 이중의 시대속에 적응을 하든 반항을 하든 선택해야 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당시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좌우이념이 아니었다. 리버럴과 보수의 갈등은 60년대 아주 강력했지만 우리세대에게는 그런 이념 대립은 아주 낯선 풍경이다. 베트남전 이후 세대인 우리는 낙태나 게이 결혼 등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리버럴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성향을 갖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필수적이며 정부의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오바마도 그런 포스트 이념(탈이념) 세대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정치추를 보수에서 리버럴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명박시대에 접어들어 한국에서는 보수기조가 강화되는데 오바마시대 미국에서는 진보주의를 강화할 것으로 보여 한·미 간의 부조응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오바마의 진보주의는 어디까지나 미국사회내부적인 것이고, 외교정책은 중도적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보수파의 중도성향 외교라인을 지킬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가 북한에 주는 의미는.

“변화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에 호의적으로 변화는 것은 아니다. 북핵문제는 진행중이다. 북한이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호할 것으로 보지만 그게 향후 북·미협상이 수월하게 풀려나갈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는 15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하는 이 대통령이 오바마를 만날 텐데 이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한·미 양국이 강력한 동맹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재각인시켜야 하고, 한국은 오바마로 통하는 여러 라인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하고, 실제적으로 오바마와 그의 외교자문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회 비준을 희망한다고 밝힌 만큼 FTA가 한·미양국에 도움이 되고 금융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해야 한다.”

―오바마의 당선이 한국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는 시카고 지역에서 풀뿌리 유권자운동을 하면서 60년대적 이념적 대결지향적 스타일을 취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탈이념적 정책을 취할 것이고, 그것과 조응하려면 이명박정부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찰스 암스트롱은 누구

1962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한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예일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시카고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이 2006년 방한에 앞서 그를 특별초빙해 자문을 구할 정도로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통한다. 저서로 ‘더 코리아스’(The Korea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