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手작업이 빚은 秀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위쪽부터 김용진의 ‘기(氣)로 가득한 기(器)’, 윤종석의 ‘히어로(Hero)’, 이길우의 ‘무희자연(舞姬自然)’

주사기로 물감을 한방울 한방울 채색하고, 인두로 뚫은 한지의 구멍 사이로 여러 색과 형태의 이미지들이 겹쳐진다. 굵기가 다른 철사를 촘촘히 박은 화면 위로 백자항아리가 떠오른다. 붓과 물감 대신 주사기, 인두, 철사 등 일상 생활용품을 작업 속으로 끌어들여 수련하듯 반복적으로 섬세한 손작업을 시도한 작품들은 특유의 색과 형태로 ‘손 일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표현과 이미지를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이나 일필휘지의 순간 작업과는 또 다르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 수공예적 작품들이 정교한 손맛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작과정에서 노동집약적인 수공을 필요로 하는 이같은 작품은 한국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작업으로 해외 미술품 경매 등을 통해 호평을 얻고 있다. 아울러 국내서도 활발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추세다.

◆ 철사를 박은 도자기 그림:캔버스 위로 철선이 비죽 드러나는 김용진(46)씨의 도자기 이미지에선 철사가 전통 수묵화의 검은 먹선처럼 선과 면을 이뤄낸다. 조각과 회화의 중간적 형태로 반입체적 부조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14~31일 서울 아트파크에서 열리는 개인전 ‘기(氣) & 기(器)’전을 통해 달항아리와 토기 등의 그릇에 주목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뾰족한 금속 핀을 소재로 수묵화 같은 분위기의 부조를 시도하고 있다. 캔버스에 드릴로 다양한 그릇 모양으로 구멍을 뚫은 뒤, 2~3㎝ 길이로 자른 6~8㎜ 굵기의 철선을 빽빽하게 또는 듬성듬성하게 꽂거나 아예 텅빈 채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전통 산수화같은 여백의 미와 먹의 농담을 연출했다.

◆ 인두로 태운 이중 한지그림:한국화를 전공한 이길우(42)씨는 연필형 인두로 한지에 구멍을 뚫고 그림을 그린 뒤 2, 3장씩 겹쳐 이질적 이미지의 중첩을 시도한다. 서울 선컨템포러리에서 2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이씨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변형시킨 ‘무희자연(舞姬自然)’이란 주제로 영화의 오버랩 기법처럼 국내외 무희의 춤동작이 혼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한복차림 무희와 서양 팝스타 마이클 잭슨, 전통산수화와 피카소의 모습이 겹쳐진다. 2003년 늦가을, 흙색 낙엽에서 강한 느낌을 받아 향불로 한지를 태워 재현해보기 시작했고, 향불 외에 인두로 한지에 구멍을 뚫어 인물과 전통산수화의 ‘믹스 앤드 매치’를 시도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100호짜리 작품을 완성하는 데 꼬박 보름이 걸릴 정도로 수공을 요하는 작업이다.

◆ 주사기로 칠한 옷그림:5㏄ 소형주사기로 채색해 화면 위로 물감방울이 볼록하게 드러나는 윤종석(39)씨의 옷그림은 얼핏 귀를 쫑긋 세운 개, 총구가 튀어나온 권총이나 별처럼 보인다. 차곡차곡 접어놓은 옷에서 개, 새, 별같은 형태를 발견한 작가는 옷을 접어 원하는 형태로 만든 뒤 이를 토대로 주사기로 물감을 칠해왔다.

작가는 11월2일까지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기법과 이미지가 독특한 옷그림을 발표한다. 방울방울 화면에 칠하는 과정부터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개 모양으로 연출해 대비시킨 ‘라이벌’ 시리즈, 브라질 프랑스 등 축구강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총모양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총성없는 전쟁’ 같은 축구를 은유하고, 슈퍼맨 배트맨 문양의 옷을 별모양으로 변신시켰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