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재의 스포츠&피플>“양복 입고 인사하는 꿈, 올해 참 많이 꿨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신창섭기자

초등학교 3학년 때 ‘포수 마스크가 멋있다’는 이유로 선수가 된 후 40년간 야구만 알고 살아 온 조범현(49) KIA타이거즈 감독이 지난 24일 오후 잠실구장에서 그의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봤다. 몇년째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타이거즈’를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은 것이다. 더욱이 SK 와이번즈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의 극적인 승부는 한국 프로야구사에 남을 ‘명승부’였기에 여운이 길다. 29일 우승 인사를 위해 상경(?)한 조범현 감독을 만나 올시즌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그리고 그의 야구 철학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야구 감독에게는 우승의 상징이기도 한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보게 돼 반갑다’는 인사말에 조 감독은 “올해는 정말 양복을 입고 인사하는 꿈을 많이 꾼것 같다. 감독을 믿고 따라준 선수들과 구단의 꾸준한 지원으로 우승 감독이 될 수 있었다”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올해 초부터 ‘길몽’을 꿨다면서 ‘꿈’얘기를 자주했다. “운명이나 운을 믿는 편이 아니다”면서도 그가 선수들에게 꿈 얘기를 한 이유는 뭘까.

“사실 불안했다. 시즌 중에도 그랬고,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SK는 무서울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최면을 걸자고 생각했다. 물론 나 자신부터 불안한 요소를 없애야 했다. 그래서 나도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이기는 상황만을 머리에 그렸다. 연초에 길몽을 꾼 것도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조감독은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 전에 곧바로 선수단을 소집해 ‘한·일클럽챔피언십’에 대비한 훈련에 들어가고, 코치진을 교체하는 등 내년 시즌을 위한 ‘팀 리빌딩’에 나섰다. 그에게 ‘우승 후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코치진을 물갈이하고 노장 선수들을 방출한 것에 대해 뒷말도 나온다’고 전했더니 그는 단호했다. 조 감독은 “인사를 미룬다고 될 일은 아니다. KIA가 내년 이후에도 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변화는 필수다. 팀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올 시즌 우승을 하긴 했지만 운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완벽한 팀이 아니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70점 정도다. 우승 직후 단행한 인사에 대해 외부 시선이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할 것은 빨리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시리즈는 7차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 드문 명승부였기 때문이다. 1-5로 끌려가다 5-5가 됐고, 그리고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나오기까지 조 감독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솔직히 1-5로 뒤질 때는 잠시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올시즌 우리 팀은 후반에 점수를 많이 냈고, 그래서 5-5 동점이 되면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SK가 투수를 많이 써 버렸기 때문이다”고 당시의 심정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6차전을 내줬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 때 끝낼 생각이었는데 지고 나서 무엇보다 선수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조범현의 야구는 어떤 야구인가’라고 물었다.

“과거의 해태 타이거즈는 홈런을 많이 쳤고 투수력도 좋았다. 조화가 잘 이뤄졌다. 그런데 야구에서 홈런을 몇 개씩 치고 완봉승을 하는 경우는 정말 몇 경기 안 된다. 대부분의 경기는 ‘작은 플레이’에서 승패가 갈린다. 우리 선수들이 그 부분에 훈련이 덜된 것 같아서 시즌 내내 강조했다. 앞으로도 그 부분을 강조할 것이다.” ‘큰 야구’의 틀에 자신의 ‘작은 야구’를 접목시켰다는 얘기로 들린다.

사실 조범현식 야구에 대해 팬들, 특히 호남지역 야구 마니아들은 비판적이기도 했다. ‘해태 타이거즈’, 특히 ‘호남 야구’를 극복하지 못한 것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전통의 명가’ 타이거즈에 지역 연고가 없는 조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것부터가 고생길이었다. 2007년 10월 조 감독이 부임할 때 KIA 타이거즈는 꼴찌였다. 더욱이 조 감독은 선수 시절 화려한 성적을 내지도 못했고 고향도 대구다. 자존심과 텃세가 강한 호남의 호랑이 군단을 지휘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팀의 색깔을 바꾸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 팬들이 ‘타이거즈는 모래알이다’, ‘근성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팀이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라고 고민했다.파악해보니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성향이 너무 강했다. 팀이 이기고 지는 것과는 관계없이 자기중심적이었다. 이러면 어떤 팀도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팀이 먼저라는 생각, 그리고 구단을 강조했다. 이제는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아낀다. 팀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솔직히 스타는 아니었다. 더욱이 호남이 아닌 경북(대구)출신이다. 지역색이 강한 ‘타이거즈’를 이끄는 데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선수 시절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치가 될 때 ‘골든글러브 등 내가 선수 때 못 이룬 것들을 제자는 꼭 받게 하겠다. 최고의 제자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처음 코치가 됐을 때 경기가 끝나고 매일 차트를 연구했다. 물불을 안 가렸다. 나 스스로 놀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경기를 마치면 차트를 정리하는 데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렸다. 공 하나의 구질과 코스를 모두 복기했다. 수작업으로 꾸준히 했다. 그것을 모아서 선수에게 접근했다. 삼성 코치(2000~2002년) 때 기록 전산화가 이뤄졌는데 그 전까지 계속 손으로 작업했다. 손으로 작업하면 잘 기억할 수 있다. 포수 박경완에게 특정 상황에서 어떤 투구였는지 물어봤다가 대답하지 못하면 혼냈다. 포수에게는 기억력이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대로 해서 성공한 경우, 상대 타자의 특별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해 놔야 한다.”

KIA가 해태로부터 구단을 인수한지 8년 동안 적지 않은 투자도 있었지만 구단의 색깔을 점차 바꿔온 것이 결과적으로 팀재건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 감독은 우승 뒤 기자회견에서 “전 구단 사장들이 오늘의 우승을 만든 것”이라며 각별한 감사를 표시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번 우승은 또한 감독과 선수단을 믿는 모그룹의 조용한 지원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번 ‘V10’달성은 호남팬들에게는 ‘해태의 타이거즈’에서 ‘KIA의 타이거즈’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그의 야구는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올시즌을 시작하면서 구단에서 자유계약선수(FA) 영입 이야기를 꺼냈을 때 거절했다. 그는 “FA 한 명이 온다고 해서 팀이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2~3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스프링캠프 때 속으로 ‘이렇게 계획하다가 안되면 집에 가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마음먹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선수의 인생이 걸린 문제니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치지 못하면 그 팀은 승리할 수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야구라는 종목에서 모든 플레이는 투수로부터 시작되며 이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투수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올시즌 6선발 체제로 갔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 처음으로 시도한 ‘6선발 체제’도 정규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챔피언을 거머쥐는 데 결정적 요인이었다.

우승후 인사차 상경하면서 시즌 두번째로 인천 집에서 잠을 잤다는 그는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어색하더라. 두 딸에게 아빠 노릇을 못해준 것이 너무 미안하고, 부인에게도 나 좋은 일(?)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조범현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대건고의 포수를 맡다가 대건고 야구부가 해체되자 서울 충암고로 전학했다. 이후 인하대를 졸업하고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이후 같은 팀의 김경문(현 두산 베어스 감독)과 함께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로 주전 경쟁을 벌였다. 1991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고, 1992년에 은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등 여러 팀의 배터리 코치를 거쳐 2002년 삼성의 우승에 기여한 후 2003년 SK 감독으로 임명되어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 시즌 3위를 거두었고, 그해 한국 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KIA식 야구’를 이뤄낸 조 감독에게 구단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함께 자리한 김조호 KIA타이거즈 단장은 “우승 후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며 “이번 우승으로 KIA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 팀으로 재도약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체육부장 kj59@munhwa.com

조범현 감독은…

▲1960년 대구 출생 ▲대구초-대건중-대건고(충암고)-인하대 ▲1982년 프로야구 OB베어스 입단 ▲1991년 삼성라이온즈 이적 ▲1993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 ▲2003년 SK감독 ▲2007년 KIA 타이거즈 코치 ▲2008년 KIA타이거즈 감독(2년 계약, 연봉 2억원, 계약금 2억원) ▲가족=부인 성상희씨와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