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한국 넘어 일본으로… 두 巨砲, 아시아를 품다

일본에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연패한 자국의 야구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侍ジャパン)’이란 별칭으로 부릅니다. ‘사무라이’는 봉건시대의 무사(武士)계급이면서 일본을 상징하죠. 우리 느낌은 조금 섬뜩하지만, 일본인들이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고 자긍심까지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선 엊그제 구단주들이 모여 ‘사무라이 재팬’을 ‘상설화’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프로야구 국가대표 상비군’을 구성한다는 것인데, 흥미롭죠? 2013년 예정된 제3회 WBC까지 4년 동안 국가대항전 20경기 정도를 소화하면 10억엔의 부수입이 생긴다는 계산이 나왔답니다. 물론 일본이 상대할 가장 인기 있는 팀은 한국대표팀일 겁니다. WBC에서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죠. 일본 구단들만 그런 게 아니고 WBC는 한국의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화이글스에서 올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김태균(27)과 이범호(28)가 나란히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한자로 ‘획득(獲得)’이라고 표기하더군요. 우리는 흔히 ‘영입(迎入)’이라 쓰는데, 느낌이 다르죠? 또 김태균과 이범호의 이름 앞에는 반드시 ‘WBC 4번타자’라든가, ‘WBC 4할타자’ 등의 호칭이 붙습니다. ‘WBC에서 마쓰자카에게 홈런을 뺏은…’ 등의 수식어도 따라다니죠.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大輔·보스턴 레드삭스)는 일본인들이 ‘괴물투수’로 부르며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WBC 효과’라고 할까, 그만큼 올 3월 WBC에서 두 한국 선수에게 일본 야구가 받은 인상이 강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WBC가 일본 구단들에는 ‘돈 안 드는 트라이아웃’”이라는 재미난 표현도 나왔습니다. 반면 WBC가 일본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선수들에겐 자신들의 상품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경연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두 선수가 받는 대우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상위권에 듭니다. 지바 롯데의 김태균이 3년간 총 5억5000만엔, 옵션까지 더할 경우 총액 규모는 7억엔(약 9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승엽이 2004년 지바 롯데와 계약한 2년간 총액 5억엔을 초과하는 규모입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이범호도 3년에 최대 5억엔(약 65억원) 수준입니다.

지바 롯데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롯데와 구단주가 같습니다. 당연히 모기업의 업종도 같죠. 일본 롯데는 김태균의 영입을 계기로 지바구장 내 롯데리아에서 ‘김치버거’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김태균이 100㎏이 넘는 거구인 만큼 ‘빅버거’로 만들고 가격은 그의 백넘버 ‘52’를 기념해 520엔으로 결정할 거라고 합니다. 여하튼 발 빠른 상술입니다.

지바 롯데는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을 영입한 뒤 한국에서 받은 TV중계권료로 그에게 지불한 금액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태균에게 호조건을 제시하며 구단사장까지 날아와 서둘러 영입한 이유는 ‘오른손 거포 영입’이라는 전력 보강 이외에 TV중계권료 등 마케팅에서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김태균이 한국의 ‘넘버 원’이란 점에 주목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프로선수가 더 많은 ‘몸값’을 찾아가는 것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를 떠나보낸 국내 프로야구는 사실 수심이 깊습니다. 20대면서 최고의 기량에 올라 있는 두 스타가 FA 자격을 취득한 첫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은 국내 무대의 수준과 인기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FA 전쟁에서 한국 구단들이 일본 구단에 완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화는 100억원이 훌쩍 넘는 거액을 동원해 두 선수를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한화뿐 아니라 다른 구단들의 충격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가대표급들과 뛰어난 용병들까지 일본으로 빠져나가면 한국 프로야구는 일본의 ‘육성군(2군)’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옵니다.

김태균과 이범호를 포함해 그동안 FA 신분으로 일본 프로야구로 옮긴 스타급 선수들은 총 9명입니다. 모두 톱클래스의 스타들이죠.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 국내 프로야구 인기가 하락하는 현상이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스타플레이어 공동화 현상’은 흥행에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구단들과 선수들이 머리를 짜내야 할 프로야구의 ‘화두’입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