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500년 전 가야 여성을 복원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순장(殉葬) 인골 복원 연구팀원들이 26일 경남 창원시 용호동 연구소에서 복원자료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 오랜만에 빅뉴스가 나왔습니다. 경남 창녕군 송현동 15호분에서 출토된 인골을 실제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문화일보 11월25일자 1면 참조) 영화나 미국 과학드라마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이야기라 모두 신기해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1500년 전 이 아리따운 16세 가야 여성을 현대과학의 힘으로 되살려낸 경남 창원시 용호동 소재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순장(殉葬) 인골 복원 연구팀원들을 금주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복원팀은 강순형(5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을 비롯해 이은석(42) 학예연구실장, 이성준(36)·양숙자(34)·박현정(31) 학예연구사, 양석진(35) 보존과학팀장, 정아름(25) 보존과학팀 연구원, 정진희(24) 연구원, 배현정(30) 행정담당, 정종현(36) 전산팀장 등 10명입니다. 27일 연구소에서 만난 이들은 이 여성을 ‘송비화’라고 이름 지어 불렀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에서 나왔고 창녕지역에 자리를 잡은 비화가야(非火伽倻) 무덤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랍니다. 이 여성에게 참으로 걸맞은 이름입니다.
복원은 처음부터 암초를 만났다고 합니다. 연구소가 2007년 12월 송현동 15호 고분을 발굴할 당시 무덤 입구에서 4명의 남녀 순장자가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도굴로 입구에 있던 1구의 인골만 빼고 모두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이 인골이 바로 복원을 통해 되살아난 ‘송비화’입니다. 강 소장은 “도굴꾼들로 무덤 속 인골이 훼손됐지만 입구 쪽에 있던 순장자는 도굴꾼들이 입구 반대편에서 굴을 파고 들어와 원형 그대로 남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국 드라마 CSI에서 인골을 복원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시도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순장인골 복원을 통해 과거 인간의 신체적 특징과 고대사회의 문화를 보다 폭넓게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답니다.
단순히 마네킹으로도 볼 수 있는 1500년 전 여성 인체 복원 모형이지만 여기에는 고고학부터 해부학, 유전학, 화학, 물리학, 법의학까지 현대 첨단학문이 총동원됐습니다. 복원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과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응용해부학연구소, 충청문화재연구원 한국고고과학연구소가 참여했습니다. 또 조각가이자 미술해부학 전문가인 김병하씨와 영화 ‘박쥐’와 ‘마더’에서 분장을 담당한 CELL팀도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유사성으로 결과를 도출하려는 고고학자와 사실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사, 과학자가 서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한때 공조에 어려움도 겪었답니다.
인체 복원은 발굴된 인골을 컴퓨터 단층촬영(CT)를 한 뒤 3차원(3D)으로 재구성해 복제뼈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립, 얼굴 물렁조직(근육과 피부조직)의 평균 두께 표시, 근육표현, 피부마감, 실리콘 전신상 제작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얼굴조직의 두께 값은 근육과 피부 조직이 남아있지 않아 현대의 16세 여성 50명의 얼굴에서 산출한 통계치를 활용했습니다. 뼈는 6세기 여성의 것이지만 살은 2009년 한국의 16세 여성의 평균치인 셈입니다. 여성의 키는 복제된 뼈를 조립한 상태에서 151.5㎝였으나 피부조직을 입힌 뒤에는 153.5㎝였습니다.
이렇게 1년간의 공조 끝에 6세기 여성은 가야식 옷까지 갖춰 입은 목이 긴 ‘8등신 미인’으로 21세기에 환생했습니다. 왼쪽 귀에 금동귀고리를 하고 있던 여성은 골반뼈 검사에서 출산경험이 없었으며 유전자 검사결과 평소 쌀과 보리, 콩을 먹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볼 때 빈혈이 있었고 충치도 여러 개 있어 통증을 느끼며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무릎을 많이 꿇었는지 무릎 뼈가 닳아 있었고 앞니로 무언가 자르는 일을 했는지 흠집이 많았답니다. 비화가야 권력자의 시녀로 추정되는 이 여성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 여성의 뼈에는 외상이 전혀 없어 지배층을 내세에도 섬기는 순장제도에 따라 독약을 마셨거나 질식사한 뒤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여성의 나이를 16세로 단정 지은 것은 법치의학적 분석에서 16.03세에서 16.65세로 드러났기 때문이랍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여성의 사망시점은 420~560년 사이로 나왔습니다. 1500년 전 죽은 여성의 나이를 맞추고 이를 토대로 실제 모습으로 복원한 현대과학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모형으로 환생했지만 유전자만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이 여성과 대화를 나누는 시대도 곧 올지 모르겠습니다.
창원 = 글·사진 박영수기자 buntl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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