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통신 新3국지’

통신업계의 ‘신(新)3국지’가 예고되고 있다. 5(SK텔레콤·SKT):3(KT):2(LG텔레콤)로 고착화된 이동통신 구도가 합병바람과 아이폰 도입으로 태풍권에 진입하고 있다. 유선시장 역시 합병바람으로 같은 수레바퀴임은 물론이다.

기압골의 변화는 지난 7월의 KT와 KTF의 합병에서 비롯됐다. 이어 불어올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의 합병은 메머드급 태풍으로 평가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3일 공식합병인가를 해줌으로써 내년 1월 출범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 역시 자회사 하나로통신과의 합병을 검토중이다. 통신업계의 새로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합병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이다. 유무선 결합 상품 정도가 아니다. KT가 아이폰을 무기로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특히 LG통신 3사가 하나로 뭉칠 경우 파급효과는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사령탑으로 모셔간 대목부터 ‘태풍의 눈’이다. 2001년 114분사와 2003년 010 3세대 번호 조기도입은 그가 KT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에 이뤄낸 작품이다. 현재 LG그룹의 직원은 17만7000여명에 달한다. 2만2000명의 GS그룹도 우군이다. 통신3사 합병이 이뤄지면 새로운 영업전략이 짜여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KT와 SK텔레콤에 비해 할당받은 주파수 용량이 적은 점은 한계다. 이에 비해 SK그룹은 3만4000여명, KT는 3만8000여명에 불과하다.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달 초 ‘워룸(war room)’을 개설해 전시(戰時) 체제를 선포한 것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보다 새로 태어날 LG통신 3사를 의식한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 도입도 빅뱅의 한 줄기가 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 초기 한국이동통신(011)을 SK에 빼앗기고, KTF를 다시 허가받은 KT는 그동안 절치부심해왔다. 1990년대 후반 SK텔레콤의 “스피드 011”, “기지국이 몇 개예요”라는 광고를 볼 때마다 한(恨)를 달래온 게 사실이다. KT의 아이폰 독점공급은 사실상 선전포고다. 유선의 장점을 살려 데이터 접속료 인하를 과감하게 단행한 것도 무시못할 대목이다. 지금까지 이동통신 무선인터넷은 가입자가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 종류와 수준을 통제하는 폐쇄적 구조였다. 국내 무선인터넷의 매출 비중이 17.4%로 일본 41%, 미국 25.5%보다 훨씬 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폰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벌써 예약구매자 6만5000명에 달한다. 더구나 50%는 타사에서 전환하는 고객이라고 한다. 이같은 아이폰 저력은 해외에서도 입증됐다. 영국 텔레포니카 O2는 최근 아이폰 독점계약으로 3위에서 1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지금까지 SK텔레콤이 50% 이상의 막강 시장점유율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발사업자라는 장점 외에 주파수(800㎒대)와 번호(011), 접속료 즉 통신시장의 ‘3대 조커’ 덕분이다. 하지만 3세대 서비스에 접어들면서 010 도입으로 번호 장점은 상당부분 희석됐고, 2세대 황금주파수(800㎒ 대역) 50㎒,중 20㎒를 내놓아야 하고, 접속료 특혜 역시 옛날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통신정책이 그만큼 왜곡돼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동통신 정책의 선진국인 영국의 경우 통신빅뱅이 일찍이 일어났다. 영국은 1994년부터 접속료의 현실화(후발사업자 우대), 번호이동서비스, 서비스 사업자의 유통사업 개입 금지, 단말기의 표준화(듀얼밴드) 등을 통해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간의 장벽을 허물었다. 그 결과 시장점유율 70%를 기록했던 선발사업자 보다폰(24.7%)은 얼마 안가 1위 자리를 오렌지에 내주었다가 되찾았으나, 최근에는 텔레포니카 O2(27.7%)에 또다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최근에는 오렌지가 4위 사업자인 T모바일(15.3%)를 합병키로 해 또다른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통신 3국지’는 너무 늦게 시작되는 셈이다. 정부 정책의 장벽 때문이었다. 합병허용과 주파수 재분배, 아이폰 도입이 가져올 결과가 궁금하다.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