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 참사>지리적 취약·빈곤·허술한 건축이 합작한 ‘퍼펙트 스톰’

아이티 강진 사태는 지리, 빈곤, 사회적 문제, 허술한 건축 양식, 불운 등이 두루 겹쳐서 발생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가지 안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겹쳐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플로리다 국제대학에서 미주지역 재해위험감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리처드 올슨 교수는 1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재앙’과 관련된 최악의 시나리오를 서반구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아이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리적 취약성 = 영국 더럼대의 로저 설 지질학 교수는 아이티 강진은 핵폭탄 몇 개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이번 강진으로 아이티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만명이 영향을 받았고, 1000만명이 지진을 느꼈다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파악했다. 이같이 파괴력이 큰 이유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불과 15㎞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고, 지진의 깊이가 지표면에서 10㎞밖에 되지 않아 충격이 거의 흡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진의 진앙은 포르토프랭스 남서쪽 15㎞지점은 카리브판과 북아메리카판이라는 두 대륙판이 만나 부딪친 뒤 동서로 엇갈리는 경계다. 특히 이 지점은 엔리킬로-플랜틴 가든 단층에 해당하는 곳.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이 단층에서는 1860년에 마지막으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지진학자 파스칼 베르나르 박사는 추가 지진 발생을 경고 했다.

◆ 허술한 건축물 = 지진에 대비해 설계된 건축물이 포르토프랭스에 거의 없었던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지진건축연구소(EERI)의 파르자드 나에임 이사장은 “품질관리나 널리 알려진 건축 지식도 없이 건물을 지은 탓에 이번과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나에임 이사장은 또 “피해 현장의 사진을 검토한 결과 대형 건물 대다수가 비연성 콘크리트를 사용해 전세계 도시 가운데 지진에 가장 취약한 곳”이라고 말했다. EERI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적용하고 있는 건축 규범은 건물을 지을 때 ‘부러지지 않고 옷걸이처럼 휠 수 있도록’ 연성으로 건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5번째 재앙 =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USAID)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난 2001년 이후 15번째로 발생한 재앙이다. 2008년에 잇따라 4개 허리케인과 폭풍이 몰려와 800명이 죽었고, 2004년과 2005년에도 살인적인 폭풍우가 있었다. 2007년, 2006년, 2003년(2회), 2002년에는 홍수 때문에 국토가 전부 물에 잠겼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