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눈물·분노의 현장>“軍에서 사고 연락도 안해줘… 아들 실종 언론 통해 알아”

“다 필요 없다. 우리 아들 살려내라.”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지 나흘째인 29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경기 평택시 포승면 해군2함대 사령부. 지난 27일 오후 사고가 난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백령도 근해를 방문하고 돌아온 실종자 가족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귀항하며 타고온 속초함(1200t급)에서 내리자마자 군 당국을 향해 항의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성기(실종자 이창기 원사 형) 씨는 “실종자 가족들끼리 대표단을 구성했다”며 “마지막 한 명을 찾아내는 순간까지 가족들은 떠나지 않고 함께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실종자 가족들 위로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28일 오후 4시30분쯤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 서서 “우리 군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해경, 육군, 해병에 미측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군을 믿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실종자 김태석 중사의 부인 이수정(여·38)씨는 “만약 살아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구조를 해야 하는데 왜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된 승조원 가족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가족들은 “군이 입을 맞추기 위해 생존자 가족들을 먼저 만나고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태석 중사의 큰 누나 효순(여·52)씨는 아들처럼 귀하게 여겨온 14살 아래 막냇동생의 생사를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김씨는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 없다”며 “배 안에서 갇혔을 경우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60여 시간이라고 하니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빨리…”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천안함 침몰지점을 직접 확인한 가족들은 군 당국의 안이한 대응에 화를 참지 못했다. 실종자 문규성 중사의 가족 박형준씨는 “평택에서 들었던 얘기와 직접 본 것이 많이 달라 다들 배에서 실망하다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한편 실종된 강준 중사는 군 복무 중 만난 옛 동료와 결혼을 40일 앞둔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고 직후 평택 해군2함대를 찾은 강 중사의 약혼녀 박모(30)씨는 29일에도 아직 마르지 않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예비신랑’의 생존을 간절히 기도했다. 박씨는 해군부사관(하사)으로 강 중사와 함께 근무했다가 3년 전 전역했으며 오는 5월9일 강 중사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강 중사는 순천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해군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했다. 그는 경남 진해의 해군 부대에서 박씨를 만나 사랑을 키워왔다. 그는 박씨가 전역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에는 박씨와 가깝게 지내기 위해 3년 전 평택의 해군2함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최근 결혼 날짜를 잡고 지난해 11월에는 결혼한 장병에게만 제공되는 부대 내 사택을 얻기 위해 미리 혼인신고도 마쳤다. 강 중사의 누나는 “지금 동생의 약혼자는 백령도 바다 위에서 동생의 흔적을 찾고 있다”며 눈물지었다. 강 중사의 어머니 임종심(60)씨는 아들의 생사가 확인조차 되지 않자 “엄마만 두고 어딜 갔느냐”며 연방 통곡했다.

평택 = 박준희·정우천기자, 백령도 = 채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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