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새겨진 세계와 한국>IT인프라는 선진국 수준…‘기록관리 문화’ 정착이 과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A홀에서 개막된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서 관람객이 1980~1990년대 선거 벽보 및 포스터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6일까지 계속된다. 김동훈기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전경

오는 6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A홀(구 태평양홀)에서 열리고 있는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IACE 2010)’를 계기로 우리 정부의 기록을 관리하는 국가기록원과 기록관리 체계 및 방식, 기록문화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침 기록전 국제기록관 코너에는 유럽과 북미, 남미, 아시아 등 각 대륙을 망라하는 18개국 기록관리기관의 연혁과 보존시설, 대표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어 지구촌의 기록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기록관(아카이브즈)은 박물관, 도서관과 함께 서구에서는 3대 문화기관으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국가기록원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한국 기록관리의 현황과 기록문화, 정보기술(IT)과 접목된 우리의 전자기록관리시스템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연재를 마감한다.

현대사회의 기록관리체제는 프랑스 혁명에 연원을 둔 민주사회의 기록관리체제와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된 사회주의형 등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성공한 혁명평의회는 국왕과 귀족들의 행정문서를 접수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1790년 9월 귀족의 저택을 압수해 국가기록보존시설로 정했다. 1794년에는 정부기관의 기록물은 국민주권에 입각한 국정 감시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철저히 보존하고 사후 공개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근대 기록관리체제의 근간이 되는 법령을 공포했다. 프랑스의 기록물관리법에는 기록물 공개연한이 명시돼 있다. 정부기록은 생산 후 30년, 개인들의 의료기록은 출생 후 150년, 인사기록 등은 120년, 재판기록 등은 100년, 국가안보와 국방기록은 60년 등과 같이 정해져 있다. 서구는 이 같은 공개연한과 함께 모든 정부기관이 공무수행 종류별로 ‘기록물처리일정표(Records Schedules)’를 운영한다.

1918년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 정부는 1920년 국가기관의 기록생산과 지도감독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록관리국과 함께 기록물을 보존하는 중앙보존시설을 설치했다. 러시아를 비롯, 동유럽과 중국, 북한, 몽골, 베트남 등에서 현재 이 같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이후 1969년 총무처 정보기록보존소가 설치되면서 기록보존이 시작됐다. 1999년 기록관리 기본법인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00년부터 시행되면서 기록물 관리가 본궤도에 올랐다. 2008년 경기 성남의 구 일해재단부지에 개관한 나라기록관은 바로 이 법률에 따라 이관될 기록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기록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지난 2004년부터는 각급 기관의 전자결재시스템의 기록물을 전자적으로 이관받아 관리하기 위한 기록관리시스템을 개발·구축했다. 국가기록원의 김재순 특수기록관리과장은 “기록물 생산부터 기록관리, 영구기록관리 등의 시스템이 모두 온라인으로 연계돼 있는 한국의 전자기록관리체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의 기록관리체제는 서구와 같이 중앙정부, 즉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부처, 국가정보원, 군기관 등은 국가기록원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기록보존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조선시대 사초와 실록편찬, 의궤 등의 기록문화 전통을 계승해 공무수행의 입안부터 결과까지 전 과정이 기록으로 남도록 기록물 생산의무가 있는 것은 서구와는 다른 한국 기록관리의 특징이다.

선진적인 기록관리를 위한 인프라는 완비돼 있지만 이 같은 토대 위에 기록물을 생산하고 보존관리해야 할 사람들의 인식문제, 즉 기록문화는 아직 서구와 비교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령 서구의 ‘기록물처리일정표’와 유사한 ‘공문서보존연한표’(1960년대), ‘기록물분류기준표’(1999), ‘기록관리기준표’(2008)를 만들어 시행해 왔지만 한국의 공직사회는 오랜 관행으로 인해 공식 결재문서 외에 조사연구보고서 등 각종 기록물을 이 기준표에 따라 관리하는 문화가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 기록학계에서는 한국의 기록관리가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록원이 미국의 국가기록청처럼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록물을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0년간 많은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록원 직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 각급 기관의 기록물 관리 수준 등 내실적인 측면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밝혔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