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고팠던 화전민촌… 지금은 이만한 곳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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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저기 뒷산에 절이 있었드래요. 그 골짝에 새도 많았어요. 그래서 ‘절 사(寺)’자에 ‘새 을(乙)’자를 써 마을이름을 ‘사을기(寺乙基)’라 불러요.”

강원 정선군 임계면 구미정 앞 골지천이 굽이쳐 흘러가는 깎아지른 벼랑 뒤편의 마을. 정선 땅 깊숙이 숨어 있는 오지인 강원 정선군 임계읍 낙천3리가 바로 ‘사을기 마을’이다.

사을기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왔다는 김진호(58·사진)씨는 젊은 시절, 가난의 기억을 되살리며 몸서리를 쳤다. 화전민이었던 아버지는 늘 소처럼 일했지만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다. 옥수수며 감자, 고추 따위의 농사를 지었지만 그저 제 먹을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혹여 갓 수확한 옥수수며 감자를 질빵(짐 따위를 질 수 있도록 어떤 물건 따위에 연결한 줄)에 지고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읍내로 팔러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돌아오는 길에 흔들흔들 고등어 한 손을 챙겨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이야 김씨가 “아무래도 대한민국에 여기 만한 데가 없다”고 했지만, 한창 피끓던 젊은 시절에는 산촌마을의 궁벽한 생활에서 벗어나고도 싶었을 터. 김씨는 “딱 한 번 고등학교 때 어찌어찌 해서 50환을 구해 그걸 밑천으로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러나 가출사건은 발생하기도 전에 진압됐다. 잿마루까지 갔다가 뒤따라온 아버지에게 재도 못 넘고 붙잡히고 만 것. 그날 밤 김씨는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호되게 맞았다.

김씨는 그때 회초리를 들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산자락을 개간하는 화전 일을 한 아버지는 어찌나 고된 노동을 했는지, 밤이 이슥할 때 돌아와 감발을 벗지도 못한 채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몸은 방 안에, 발은 방 문턱에 올린 채 그냥 잠이 들어버린 거지.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러셨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참 마음이 짠해져.”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줄잡아 1만여평. 김씨는 “거기서 한 뼘도 더 늘리지 못했다”고 겸연쩍게 웃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땅을 다 지키면서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용한 일’이다. 김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고 했다. 마을 길을 넓혀서 번듯한 길 끝에 노후를 보낼 집을 새로 짓고 싶다는 것이었다. 땅이 곧 수확할 곡식의 양으로만 가늠됐던 때, 그때는 길을 놓는다 해도 아무도 생명 같은 땅을 내놓지 않았다. 사을기 마을 길이 좁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씨는 “넓은 길 끝에 우리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선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