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 기획 老兵은 말한다>“중공군 12만명 포위 뚫고 탈출…‘흥남철수’ 아직도 생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재생(왼쪽)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인천·경기 지부장과 강대윤 사무국장이 인천 남구 수봉공원에 있는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에 기록된 이름을 확인하며 참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인천 = 정하종기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군3사단 병사들과 성명불상의 한 재일학도의용병(오른쪽 두번째)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원산에서 모닥불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재생씨 제공

“고가이(ごうがい·호외)를 보니까 북한이 쳐들어와서 전쟁이 났다는 거야. 빨리 가서 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 지난 5월31일 인천 남구 숭의동에 위치한 수봉공원에서 만난 김재생(80)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인천·경기 지부장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서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 지부장은 “일본에 있을 당시나 지금이나 아사히(朝日)신문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는데 그때도 길에서 아사히신문이 호외를 뿌리기에 보니까 공산주의인 북한이 쳐들어왔다는 거야. 전부터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도 가서 공산주의로부터 남한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지부장은 일본 오이타(大分)현의 벳푸(別府)고교에 재학 중이던 스무살 청년이었다.

함께 만난 강대윤(88) 인천·경기 사무국장의 참전 과정은 더 극적이었다. 그는 “1950년 9월15일에 꿈을 꿨는데 고향 어르신이 꿈에 나타나서 ‘넌 뭐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더라”며 “아무래도 꿈이 이상해서 바로 신문을 보니 아주 조그맣게 실린 학도의용군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바로 그 다음날 자원 입대를 했다”고 말했다. 14세가 되던 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와 후쿠오카(福岡) 구루메(久留米) 지역에서 일본인 개인병원 조무사로 일한 지 13년이 되던 때였다. 병원의 일본인들은 강 사무국장에게 “싸우다 죽을 게 뻔한데 뭐하러 참전하느냐. 일본에서 조금만 더 공부하면 의사도 될 수 있으니 가지 마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강 사무국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강 사무국장은 “시베리아에 잡혀 갔던 일본군들이 매일 같이 공산주의 반대 시위를 하던 것을 보고서 공산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며 “내 조국이 공산주의 체제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과 강 사무국장은 그해 9월18일 나란히 의용군에 입대해 오이타현 지역 미군 3사단 신병 훈련대였던 ‘캠프 모리’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 자위대가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에서 약 2개월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두 사람은 재일학도의용군 4진으로서 54명의 동기들과 함께 같은 해 11월 전쟁터로 출정했다.

김 지부장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들은 처음으로 미군 군번을 받은 한국인이었다”며 “말하자면 최초의 카투사(KATUSA)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아직도 자신의 군번 ‘K-1138339’(K는 한국인을 의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 땅에 돌아온 그들 앞에는 6·25전쟁 사상 가장 참혹했던 것으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1950년 11월11일 미군과 함께 원산에 진입한 두 사람은 미군 3사단으로 편입됐다. 한때 낙동강 이남까지 몰렸던 유엔군 방어선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그후 연이은 공세로 계속 북상하던 시기였고, 곧 승전이 눈앞에 보이던 때였다. 미3사단과 함께 인민군을 추격해 계속 북진하던 김 지부장은 어느새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이르렀다. 기세등등하던 미군은 11월20일쯤 적군에 포위된 것을 알았지만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김 지부장은 “그때 정찰 나갔다 교전하고 돌아온 미군들이 ‘차이나, 차이나’라고만 외쳤다”며 “그래도 정말 중공군인지 북한군인지 몰랐는데, 적군이 낮에는 꼼짝 안 하고 있다가 꼭 밤에만 나타나서 공격하고 숨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1월26일 드디어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됐고 포위된 상태로 전멸 위기에 놓였던 미군은 대대적인 후퇴작전을 시작했다. 김 지부장은 “죽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어. 마치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진열해 놓은 것처럼 시체들이 쌓이고 또 쌓이는데 시체를 후송할 방법이 없는 거야. 처음에는 군용 트럭에 40구씩 실어나르던 것을 나중에는 그냥 산더미처럼 쌓아서 옮기다가 결국에는 더 이상 트럭이 없어서 일부는 방치한 채 두고 와야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김 지부장이 속해 있던 미군 사단은 결국 중공군 12만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 ‘흥남 철수’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흥남 철수는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명, 민간인 10만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킨 작전을 말한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전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로 시작하는 가수 고 현인씨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는 당시 흥남 철수의 참혹상을 그린 노래라고 한다.

김 지부장 등 두 사람도 당시 전차에 태워준 미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도 전쟁과 죽음의 문턱을 오간 기억은 생생하다. 김 지부장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최근 남북한 긴장 고조에 대해 “전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함부로 얘기할 문제도 아니다”며 “서로 오해할 만한 일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지 또 다시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하거나, 제2의 6·25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인천 = 박준희기자 vinkey@munhwa.com